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 6절에서 분명한 원칙을 선언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이는 은혜의 복음과 모순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바울은 복음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공의를 분명히 세운다. 은혜는 심판을 지우는 면허증이 아니라, 심판 앞에 설 존재를 새롭게 사는 길로 이끄는 능력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 믿음의 고백만큼이나 삶의 방향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바울이 이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자비가 클수록 인간은 쉽게 그 은혜를 오해하고 남용한다. 용서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은혜는 도덕을 폐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감사 속에서 더 성실한 삶을 살게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은 방종이 아니라 책임이며, 사랑은 게으름의 변명이 될 수 없다.
7절에서 바울은 한 부류의 사람을 보여준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 신앙의 길은 언제나 좁은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다. 그래서 오래 참음이 필요하다. 즉각적인 보상이 보이지 않아도 선을 포기하지 않고,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영생을 약속하신다. 이 영생은 단순히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현재를 지탱하는 소망의 힘이다.
반대로 8절에서 바울은 또 다른 길을 제시한다.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좇으며, 당을 지어 분열을 일삼는 삶이다. 공동체를 찢고 자기 주장에 몰두하는 모습은 언제나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온다. 바울은 영생의 길과 진노의 길을 명확히 대비시킨다. 신앙은 중립 지대가 없다. 우리는 매일 진리를 좇는지, 아니면 편의와 불의를 좇는지 선택하며 살아간다.
9절과 1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공의가 차별 없음을 강조한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임한다. 그리고 이 원칙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동일하다. 하나님의 심판과 보상 앞에서 누구도 특권을 가질 수 없다. 신분이나 배경이 아니라, 삶의 열매가 기준이 된다.
이 말씀은 우리를 긴장시키지만 동시에 바른 자리로 이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그 은혜는 우리를 선한 삶으로 부르신다. 행위로 구원받지는 않지만, 구원받은 삶은 반드시 행위로 드러난다. 오늘의 묵상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길을 참고 걸어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핑계 삼아 멈춰 서 있는가, 아니면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바라보며 선을 행하는 길을 걷고 있는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을 증언하시기를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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