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양극화의 원인

1) 경제적 원인 - 불평등

국제복음과공공신학연구소 황경철 박사
황경철 박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의 상관관계에 주목하였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그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져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 양극화를 초래하는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론상 모든 국민은 각자가 동등하게 1인 1표를 갖지만, 부유층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서민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부자들의 정치적 장악력이 더욱 커진다. 이런 불평등은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훼손하고 혐오와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기와 법치주의의 훼손을 초래하여 사회 공동체의 통합과 유대를 저해한다.

장하성은 경제적 불평등이 한국 사회 양극화의 구조적 기반을 제공한다고 지적하며 그 근거를 네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거시적으로 국가 경제는 성장하더라도 그 속에서도 불평등은 더 심해졌다. 한국 경제는 계속 성장했지만, 그 혜택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는 2023년 기준 0.34로 OECD 평균(0.31)보다 높게 나타났으며(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이 심하다), OECD 31개 회원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불평등이 더 심한 나라는 코스타리카(11.6%), 칠레(8.8%), 멕시코(3.8%) 등 3개국 뿐이었다. 둘째, 노동시장의 불평등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해지고, 둘 사이를 이동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노동자들은 임금 격차와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셋째, 부동산 문제와 자산 불평등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노동 소득보다 자본 소득의 비율이 높아진 탓에 부동산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부의 대물림 수단이 되어버렸다. 토지와 주택에 대한 거시적 차원의 정책적 규제가 없다면 경제적 양극화 해소는 요원할 것이다. 넷째, 경제와 정치권력 사이의 고질적인 유착이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정책을 조작하고, 불평등을 고착화한다. 정치권과 대기업, 고소득층이 유리한 법과 정책을 만들면서, 경제적 불평등은 결국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로 굳어진다.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양극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다른 나라의 사례가 있는가? 미국의 사례를 보자. 러스트 벨트(Rust Belt)는 1960년대 이후 자동차와 철강 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미국의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중국의 제조업 추격과 실리콘밸리와 월가 금융업의 성장으로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은 경제적 침체에 빠졌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였던 이 지역은 중산층이 사라지고, 분노와 적의를 품은 백인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낙수효과 선전에 등을 돌리고, 트럼프를 선택했다. 영국판 러스트 벨트라고 할 수 있는 잉글랜드 북동부 지역도 이와 상황이 비슷하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저임금으로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동유럽계 노동자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지지하였고, 보수당이 전체적으로 압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적 불평등은 중산층을 사라지게 하여 양극화를 촉진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 10% 가구가 전체 순자산의 점유율이 44.4%로 전년도에 비해 1.0%p 증가하였다.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순자산 10분위 가구의 점유율은 2017년 41.8%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중간’이 사라졌다. 자산 규모의 불평등으로 삶 자체에서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는 초(超)양극화 현상은 사회 구성원의 공통 목표와 가치를 설정하기 힘들게 하고, 사회적 통합을 저해한다. 밀라노비치는 현대 고소득 국가에서 불평등 증가로 나타나는 치명적인 결과로 중산층의 공동화(空洞化)와 부유층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금권정치의 고착화)를 꼽았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표심을 얻고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일시적 처방을 활용한다. 이것은 다음에서 언급할 국민의 불안과 두려움을 달래는 듯하지만, 결국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고 자기 진영을 강화하는 집단이기주의와 정체성 정치를 부추긴다.

2) 사회적 원인 – 불안과 두려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소위 3고(高) 현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국민 정서는 현실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을 받는다. 우리 사회는 깊은 고립과 좌절, 서로를 향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하여 사회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팽배한 불안과 외로움의 심리는 정치적 영역에서도 투영되는데, 특정 이념과 진영에 속함으로써 소속감과 정체성을 찾는다. 2017년 12월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은 “인종·종교·성정체성·출생지에 기반한 정치적 부족주의(tribalism)가 포용적 국가주의를 대체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분노가 이성을 누르고, 노여움이 정답을 가리게 하며, 위선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존 히빙은 개인의 심리적, 사회적, 유전적 요인이 정치 성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흥미로운 연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정치적 대립을 논리적이고 정책적 대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양극화에 대한 보다 폭넓은 시각을 제공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인정과 소속감을 추구하므로 소속된 집단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다. 때로는 보편 상식이나 확인 가능한 사실마저 부정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맹신에 가깝도록 주장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는 지난 몇 년 동안 일련의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대하여 믿을 수 없을 만큼 양극단으로 갈라져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태를 목격해 왔다.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란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다양한 입장을 존중하는 정당 정치나 폭넓은 보편 정치를 거부하고 성별, 종교, 장애, 민족, 인종, 성적지향, 문화 등으로 공유되는 집단 정체성에 기반하여 배타적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나 사상을 의미한다. 과거의 정체성 정치가 ‘공통의 인간성’을 강조했다면, 오늘날 부족주의적 정체성 정치에서는 ‘공통의 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백인 유권자들이 반감을 갖는 대상이 과거처럼 흑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슬림이나 히스패닉 등 다른 소수 인종 및 여성이나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게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반감의 정도도 혐오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높은 관세를 제시한 자국 보호무역과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고, 유럽과 남미 등 전 세계적인 극우화는 정체성 정치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한국 사회도 서로의 정책을 듣고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정치적 상대 진영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귀를 닫고 상대를 배제하려는 모습이 짙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불안과 고립감은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는 토양이 되었고, 그 결과 사람들은 왜곡된 방식으로 정체성과 소속감을 충족하려는 ‘정체성 정치’에 의존하게 되었다. 김상봉의 지적대로 이제껏 한국 정치 역사는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정당성을 찾고,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정쟁(政爭)의 반복이었다. 나치 치하에서 독재자 히틀러를 옹호하여 비판받았던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칼 슈미트의 “정치란 적과 동지의 구분이다”라는 말대로 흑백논리, 진영 싸움을 반복하는 듯하다. 상대를 적폐 청산이나 타도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시위와 촛불과 탄핵으로 끌어내렸으나, 새로운 집권 세력에는 통합도, 상생도, 협치도 찾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를 무너뜨림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수립하려는 정권은 결코 온전한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 모두의 나라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인이나 언론이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려고 힘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세를 규합하고 지지층을 확보하고자 가짜 뉴스로 여론을 선동하고, 프레임을 덧씌워 갈라치는 데 활용한다는 것이다.

삶이 고단하고, 현재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친 국민은 단순한 언어, 강력한 상징, 확실한 정체성을 갈망하고 있어서 음모론과 가짜 뉴스에 취약하다. 표시영과 정지영은 공동연구에서 뉴스 프레임은 가짜 뉴스 특성상 ‘의혹/고발’ 프레임이 과반수를 넘고, 시청자의 ‘불안’, ‘분노’ 정서를 이용하여 설득 효과를 높였다고 지적하였다. 애플바움은 지난 10여 년 동안 권위주의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가 민주주의를 대체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은 ‘잃어버린 조국을 재건하고 기억의 간극을 메우고’ 싶어 한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정체성을 위해 허구적 과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과거의 세부적인 사실들, 즉 위대한 지도자에게도 결함이 있었다거나 지금도 회자되는 전쟁의 승리가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사실에 관심 없다. 그들은 과거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만화책에나 나올 법한 역사를 원한다. 더 중요하게는 바로 지금 그러한 역사 속에서 살고 싶어 한다. ... 복고적 노스탤지어가 종종 음모론이나 미디엄 사이즈 라이를 동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클라인은 현대 사회가 어떻게 양극화와 분열과 기능장애로 추락했는지에 대하여 “현대 정치는 논쟁이 아니라 소속의 문제이며, 정치적 신념은 이제 개인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절대적 충성심을 요구한다”라고 설명했다.

3) 문화적 원인: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

현대 사회는 불안과 우울, 외로움과 개인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을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라는 가상공간으로 몰아넣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관심사와 신념에 따라 형성된 귀속 집단(identity group) 사람들의 연대 의식을 강화했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디지털화된 연결망 안에서 관계를 맺고 더 많은 시간을 그 안에서 보내고 있다. 오늘날 정보 탐색, 뉴스, 금융, 온라인 회의, 여행 예약, 상품 구매와 판매, 교육과 학습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는 ‘1인 방송 시대’를 열었고, 홍수처럼 쏟아지는 OTT 콘텐츠는 소비의 방식과 기준을 바꾸어 놓았으며,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발전은 생활 양식과 문화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문화적 측면에서 소셜 미디어는 양극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소셜 미디어는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을 온라인 공간에서 ‘내 편’과 ‘네 편’으로 이분화하는 데 일조했다.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었다. 결과는 무엇인가?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과 정보를 교환하고, 관점을 소통하며, 진지한 숙고를 통한 타협이 어려워진다. 확증편향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혐오와 왜곡으로 나아가기 쉽게 만든다. 유튜브에서 검증되지 않는 콘텐츠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알고리즘을 통한 콘텐츠의 소비는 정치적 편향성을 강화하여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 시카고 대학교 법학자 선스타인은 소셜 미디어가 우리 자신의 목소리에만 갇히게 하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효과를 우려하며, “정보의 편식은 민주주의를 감정화하고, 시민을 진실보다 확신의 노예로 만든다”라고 역설했다.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가짜 뉴스와 편향된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현중과 정현주는 확증편향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사람들은 진실이었으면 하는 사실을 계속 믿기 위해 반대 증거를 도외시한다. 둘째, 자신의 입장과 일치된 정보에 더 빈번히 접하고, 정보의 진위에 상관없이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는데 이용한다. 셋째, 아주 설득력 있는 반박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주어진 가설을 진짜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넷째, 사람들은 자기 삶과 직결된 가설의 진위에 대해 생각할 경우, 논리적인 사고보다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고 오류를 피하는 방향으로 사고하는 성향을 보인다. 다섯째,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는 증거를 탐색하는 행위나 사고 성향을 학습한다. 확증편향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흡수하게 하고, 태도의 극화를 일으켜, 칼 슈미트가 말한 것처럼 만나는 모든 사람을 ‘적과 동지’로 구분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지점에서 발견된다. SNS를 통해 가짜 뉴스를 가공 생산하고, 전달 확산하며, 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락을 취하여 세력을 규합하여 광장 집회와 가두시위를 실행한다.

인터넷은 사용자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나열하고, 뿌리고, 부풀리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수에 지나지 않는 사용자들이 대부분의 정보를 생산해 낸다. 인간은 자신이 다른 구성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는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편안함을 느낄 뿐,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옳으냐 그르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를 위해 맞춰진 알고리즘으로 재편된 전장터에는 적과 동지, 그들과 우리, 보수와 진보, 탄핵 반대와 탄핵 찬성, 반공과 빨갱이, 흑과 백만 있을 뿐이다. 가족이라는 공통의 경험도, 복음이라는 하나님 나라도,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가치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서로에 대한 신뢰도 모두 증발해 버리고 만다. 우리는 서로 다른 면을 봐야 하는 동시에, 서로 공통의 경험과 가치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시야는 일부가 아닌 전체로 넓어지고, 우리의 시각은 균형을 찾게 된다. 이를 위해 자신이 주장에만 갇혀 외골수가 되지 않도록 다양한 견해에 의도적으로 노출되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펼 때 겸손과 배움의 자세로, 상대가 의견을 말할 때 경청과 존중이 필요하다.

경제적 불평등이 양극화의 구조를 놓았고, 사회적 불안에서 배양된 정체성 정치가 양극화를 작동시켰다면, 문화적으로 소셜 미디어는 양극화를 더 많은 사람에게 확산하고 심화시켰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한국 사회가 경험한 독특한 역사적 맥락이다.

4) 역사적 원인: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한국 사회의 양극화 원인으로 앞에서 언급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원인 이외에 또 하나 고려할 사항이 있다. 처음 세 가지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발견되는 보편적인 원인이라면, 네 번째 역사적 원인은 한국 사회가 독특하게 지내온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이다. 두 사건은 이미 두 세대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국민 정서에 상흔(傷痕)으로 남아 있고, 때로는 국민을 갈라놓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두고 입장이 나뉜다. 친일파의 반민족행위와 과거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성의 있는 사과와 배상책임을 요구한다. 진실 없이 용서는 없고, 망각은 치유가 아니라 2차 가해라고 주장한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외교 현안이 아니라, 여성 인권, 국가폭력, 집단 트라우마의 문제이므로, 국제법을 기반으로 사죄·배상·기억의 삼각축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과의 경제·안보 협력에 방점을 두고 실리적 외교와 미래지향적 통합을 강조한다. 양국 관계의 단절이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에 신중히 접근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외교 마찰로 아베 총리가 한국에 수출통제를 취하자, 국내에서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역사의 질곡을 따라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 때 임시정부 내부 독립운동 노선에 체계적이고 통일된 입장이 없었던 것도 역사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시각 차이를 낳았다. 크게 세 갈래의 노선이 있었는데, 이승만의 외교 독립노선, 안창호의 실력양성 준비론, 이동휘의 무장 투쟁론 등이다. 실제로 이러한 차이는 임시정부 통합 과정에서도 걸림돌이 되었고, 형식적으로 통합 상해 임시정부가 탄생한 후에도 여전히 분쟁의 씨앗이었다. 해방 전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뚜렷한 대결 구도를 보인 서북(평안, 황해) 대 비서북(경기 및 남부) 양상이 임시정부에 참여한 기독교인에게도 감지된다.

해방 후 1945년 12월 신탁통치반대운동은 좌익세력과 우익세력 간 대결 구도를 확고하게 형성하였다. 우익세력이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한 다음 민주의원으로 연결되는 조직적 행보를 보였다면, 좌익세력은 남로당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통일전선을 형성하였다. 6.25전쟁을 기점으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은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후 이승만 정권은 반공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며 대한민국 정부를 출범하였다. 반공주의는 80년대 중반까지 군부독재 정권의 핵심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민주화 이후에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반공 또는 멸공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적과 동지로 편을 가르고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언론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공정한 보도를 통해 국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책임 있게 수행하기보다는 정권과 유착하여 이념 논쟁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6.25 전쟁 이후로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승만 정부의 공(功)은 강조했으나, 인권탄압과 권력의 독재화라는 과(過)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한계를 지녔다. 오늘날 일부 극우 목회자들의 광장 정치와 태극기 집회, 극우적 선동과 발언은 한국 사회의 이념 간, 진영 간 양극화를 해소하기보다 더 부채질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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