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새봄을 희망차게 맞이하는 시기에 세계는 다시 충격으로 냉각되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공격으로 새로운 정국에 돌입하게 되었다. 다시 힘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초강대국의 군사 행동과 이에 대한 보복이 이어질 때마다 우리는 묻는다. 왜 대화가 아니라 힘인가. 왜 설득이 아니라 응징인가. 그 배경에는 오래된 사상, 곧 ‘우월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도대체 우월주의란 무엇인가? 우월주의는 자신이 속한 인종·민족·국가·계급·종교·지식·경제력이 타 집단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다고 믿고, 그 믿음을 근거로 지배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태도다. 단순한 자부심이 아니다. 타자를 낮추고 배제하는 사고방식이다.

역사는 그 위험을 반복해 증명했다. 인종 우월주의는 노예무역과 식민지 지배를 낳았다. 민족 우월주의는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종교 우월주의는 십자군 전쟁과 종파 갈등을 낳았다. 계급 우월주의는 봉건제의 신분 차별을 고착화했다. 오늘날에도 반이민 정책, 난민 배척, 다문화 가정 차별 속에서 그 그림자는 여전하다.

문학과 영화도 이를 고발해왔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는 전쟁 속에서 한 개인이 민족과 이념의 틀에 갇혀 짓밟히는 과정을 그렸다.

최근 작품인 One Battle After Another는 상류 사회의 특권 의식과 백인 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며, 구조화된 우월감이 어떻게 폭력으로 번지는지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 역시 신분과 권력의 차이를 넘어서는 연대를 통해, 우월감이 아니라 공감이 사회를 살린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월주의에 대한 공통의 해소책은 무엇인가?
첫째, 철학과 인문학의 회복이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라는 윤리적 훈련이 필요하다. 교육은 경쟁 이전에 존엄을 가르쳐야 한다. 인성과 도덕성 고양 캠페인은 형식이 아니라 생활 속 실천이어야 한다.

둘째, 제도적 장치다. 건전하게 개정된 차별금지법과 인권 보호 정책,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국제 협력, 약소국을 존중하는 외교 원칙이 병행되어야 한다. 힘의 과시가 아니라 상호 의존의 인식이 외교 지침이 되어야 한다.

셋째, 문화의 힘이다. 영화와 드라마, 문학은 타인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는 공감의 통로다. 우월주의를 미화하는 서사가 아니라, 상처 입은 타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사회의 감수성은 높아진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우월주의자다. 그러나 강도 만난 자를 극진히 돌보아 주고 살려낸 자는 유대인에게 차별받던 사마리아인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이웃을 이렇게 사랑하라고 했다.

위인과 석학들은 이미 이렇게 경고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눈에는 눈”의 논리가 결국 세상을 멀게 만든다고 했다. 보복의 연쇄는 모두를 장님으로 만든다는 경고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움은 또 다른 미움만을 낳는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모든 우월주의를 무너뜨리는 원칙이다. 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력의 서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제안한다. 국가와 종교, 인종을 넘어선 공동의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월주의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차별에서 시작된다. 개인이 타인을 낮추는 말 한마디, 기업이 약자를 배제하는 정책 하나, 국가가 힘을 앞세우는 결정 하나가 쌓여 전쟁과 갈등이 된다.

우월주의를 경계하라는 경고는 도덕 교과서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평화와 직결된 현실의 문제다. 힘이 아니라 존엄을, 지배가 아니라 공존을 선택할 때 미래는 열린다. 개인과 기업과 국가가 스스로의 ‘우월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희망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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