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성 교수
이춘성 박사 ©기독일보DB

이춘성 박사(한기윤 선임연구위원)가 최근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원장 신원하, 이하 한기윤) 홈페이지에 ‘AI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일하는가: 직업을 넘어 소명으로’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 박사는 “지난 5년 사이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술 혁신의 차원을 넘어 노동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힘으로 부상했다”며 “대규모 언어모델의 등장은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글쓰기, 분석, 코딩, 설계, 기획과 같은 고도의 인지적 과업을 자동화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다. 우리는 어느새 ‘기계가 인간을 보조하는 시대’를 지나 ‘기계가 인간의 전문적 과업을 대체하거나 재편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했다.

이어 “이제 질문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애는가, 늘리는가’라는 이분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일의 수’를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 자체를 다시 쓰게 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며 “산업화 이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온 직업 구조는 지금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레 묻게 된다”며 “그리스도인에게 직업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면 인공지능이 바꾼 일의 지형과 상황 때문에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직종으로 옮기는 것은 옳은 일인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전의 일은 하나님의 소명이 아니었던 것일까? 새로운 일을 선택할 때에도 여전히 ‘소명’이라는 기준으로 하나님께 묻고 결정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라고 했다.

그는 “AI가 인간의 인지 노동을 광범위하게 대체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알고리즘은 복제할 수 있고, 모델은 확장할 수 있으며, 데이터는 무한히 저장할 수 있다. 복제 가능한 이러한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값이 떨어질 것”이라며 “반대로 복제할 수 없는 것의 가치는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하는 일 가운데 정말로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희소성의 중심이 이동하는 시대, 더 이상 직업의 간판만으로는 자신을 설명하기 어렵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영역, 복제되지 않는 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결국 AI 시대의 경쟁은 속도의 경쟁이 아니라 우리와 각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고유한 특성, 곧 원본성과 본진을 확보하는 경쟁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원본성과 본진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리고 단지 생존 전략으로서가 아니라 신앙의 언어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했다.

이 박사는 “인공지능은 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한 사람의 내면을 빚어 성화의 길로 이끄시는 일은 결코 복제될 수 없다”며 “결국 신자의 일과 직업, 그리고 그것을 통한 성공은 외적인 성취에 도취되는데 있지 않다. 그것은 자신을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역사에 기꺼이 참여하는 데 있다. 일이 창조적이고 탁월해질수록 그 탁월함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참된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증언하게 되는 상태, 바로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성공이며 그리스도인의 일의 본질”이라고 했다.

이어 “AI 시대의 경쟁이 본질과 원본성의 경쟁이라면, 그리스도인의 본질과 원본성은 더 깊은 곳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남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이나 어떤 일을 떠올리면 특정한 이름이 곧장 호명되는 이른바 ‘호명 사회’의 특성에 있지 않다”며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사실, 바로 그 진리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다음 질문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 근원적 원본성을 지닌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그는 “소명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는 구원의 부르심을 뜻하며, 이차적으로는 그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 속에서 감당하는 일과 직업을 가리킨다. 달리 말하면, 전자를 ‘내적 소명’ 혹은 ‘일차 소명’이라 하고 후자를 ‘외적 소명’ 혹은 ‘이차 소명’이라 구분할 수 있다”며 “이러한 구분은 이차 소명이 언제나 일차 소명의 범위 안에서 수행될 때에만 온전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예컨대 교사라는 직업은 단순한 생업의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임을 삶으로 드러내는 자리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결국 하나님의 자녀로서 직업과 일을 통해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계명이 곧 그리스도인의 소명의 본질”이라며 “그러므로 이 계명을 의식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직업 활동과 노동은 생계와 소비를 위한 행위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는 소명이라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소명의 핵심 질문은 ‘일을 거룩하게 볼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일이 과연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길이 되는가’이다”라고 했다.

이 박사는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던졌던 근본적인 질문, 곧 ‘소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며 “종교개혁 전통에 따르면 소명은 성취를 통해 획득하는 지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먼저 주어지는 부르심이다. 루터와 칼뱅은 소명을 특정한 종교적 직분에 한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모든 신자의 삶 전체에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하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명은 ‘무엇을 이루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요청”이라며 “이 관점에서 직업과 일은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사회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더불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담론을 조급히 좇으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태도도 막연한 공포에 잠식되는 마음도 아니”라며 “전환기의 혼돈 속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것은 오히려 ‘잠잠함’이다. 그리고 인간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재정립”이라고 했다.

그는 “끝으로 이 지점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피할 수 없는 사명이 주어진다”며 “첫째,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가 변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능력이나 성과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두는 삶은 기능과 효율, 능력을 숭상하는 사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질서를 조용히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둘째, 그러한 삶은 자연스럽게 질문을 낳는다. “왜 저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가?” 그 대답은 시장의 평가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정체성을 두기 때문”이라며 “이때 교회는 단순히 윤리를 가르치는 공동체가 아니라 혼란의 시기에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와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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