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설교에 등장해서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한나가 아들이 없는 까닭에 아들을 가진 브닌나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후 성전에 올라가 여호와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1장 10절에 나온다. 자기에게도 아들을 주셔서 본때를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하다가 갑자기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여 그분의 뜻을 알고 난 후 아들을 바치는 헌신 기도로 바뀌었다고 얘기한다.
인간적인 기도로 시작해서 헌신적인 기도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그 설교를 듣는 이들은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된다. 이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구절이 있다면 15절이다.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것 뿐이오니.”
“여호와 앞에 자기 심정을 통했다”라고 했으니 “하나님과 마음이 맞았다”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한나와 하나님이 서로 통했다고 이해한 것이다.
원어로 보면 “but I have poured out my soul before the LORD”라 번역할 수 있다. 즉 “한나가 자기 마음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았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나 행동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한나가 일방적으로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토로한 것일 뿐이다. “한나와 하나님의 마음이 서로 통했다”라 해석할 여지가 없단 말이다.
한나의 기도가 나오는 삼상 1:10–11을 확인해 보자. “그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본문의 순서를 보면 한나는 “마음이 괴로운”(מָרַת נָפֶשׁ, 쓴 영혼) 상태로 기도하고 통곡하고, 그리고 서원했다“라고 되어 있다. 본문에서 한나의 기도가 중간에 바뀌었다고 이해할 여지는 전혀 없다.
여기서 “서원하다”(וַתִּדֹּר נֶדֶר)는 ‘기도의 절정’이지, ‘기도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나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그녀는 기도하자마자 하나님께 아들을 바치겠노라 헌신한 여인이다. 한나의 기도는 흥정이 아니었다. “주시면 드리겠습니다”라는 거래가 아니라 ‘나실인 헌신적 서원’이다. 당시 자식을 얻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소원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와 하나님의 언약 역사 안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한나는 단순히 아이를 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쓰임 받는 아들을 구한 것이다. 그 아들이 바로 선지자 ‘사무엘’이다.
그녀의 모습은 창세기 16장에 나오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름을 볼 수 있다. 사래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자기 몸종인 하갈을 남편 아브람에게 들여보낸다. 하갈이 임신하매 그녀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 사라를 멸시했다.
그러자 사래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창 16:5)라고 한다. 그리고 6절에 보면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한나의 모습과 대조적이지 않은가?
한나는 다른 아내인 브닌나가 괴롭게 했어도 대적하지 않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께 아들을 주시면 바치겠노라 헌신의 기도를 올림을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을 갖고 난 이후 젖을 떼자마자 그 소중한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의 성전에 바치는 모습이다.
그동안 젖을 먹이며 얼마나 정이 들었을까?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가 다르다 했거늘,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바칠 수 없는 핑곗거리가 적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약속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쳤다. 그래서 나온 헌신의 아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 사무엘이다. 그렇다. 위대한 작품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눈물의 희생과 헌신이 뒷받침된 배경에서 탄생하는 작품이다.
이 한나의 기도와 나의 기도를 비교했을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 기도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조건적인 기도일 때가 많음을 본다. 무고한 핍박 속에서도 대적하는 기도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 헌신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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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