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애 박사
이경애 박사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것은 너무나 유명한, 17세기 철학자 파스칼 (Blaise Pascal, 1623-1662)이 말한 것으로 알려진 명언이다. 신앙과 인간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한 파스칼은 절망 속에서도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명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여 절망하고 무책임한 오늘을 보내는 것 대신, 오늘 내가 해야 할 나의 일을 묵묵히 성실히 감당하겠다는 참으로 엄숙한 자신을 향한 준엄한 명령이 아닐 수 없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허둥대며 두려워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우왕좌왕하느라 이렇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한다. 만약 파스칼처럼 지구의 종말 앞에서도 담담히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늘 그 자세로 살아온 내공 있는 사람일 것이다.

상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내담자가 ‘지금-여기’에 존재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적인 어려움은 대부분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 분노, 아쉬움과 후회의 감정에 매몰되어 자책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몰두하던지, 아니면 반대로 아직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가장 확실하고 중요하고 명확한 것이 오늘,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분명한 현실을 망각한 채 과거나 미래에 매어 사는 것, 이것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오늘, 내가, 여기에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의미를 만들고 찾는 것을 중요시하며,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에서도 지금, 내가, 내 몸으로, 감정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의 생생함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개념 검사의 하위 요인인 시간성 요인에서도 한 개인이 어떻게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분열이 아닌 연결점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해석하는가를 중시한다. 이 모든 것의 지향은 결국 떠나간 시간 속의 회한이 아닌 그 안에서 의미와 반성할 것, 감사와 축하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 그 힘으로 미래의 더 나은 나의 삶을 위한 현재 노력과 의미를 부여하는 신성한 수고를 중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도대체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인가(시간)에 대해 몰두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혹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닌(공간),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공간과 시간적 개념, 3차원적인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현상적 존재에 매인 제자들에게 천국은 개인이 그 천국을 어떻게 믿고 받아들이고 기대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누가복음 17장 20-21절). 결국 오늘을 충실히 온전히 살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와 화해하는 것도, 미래의 비전도 모호할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날마다 이곳, 저곳에서의 어지러운 소식들을 접하며 쉽게 불안해지는 요즘이다. 나의 미래가, 우리나라의 미래가, 우리 교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염려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래서 이것이 원인이었다, 혹은 저것이 문제라는 식의 원인을 찾고 타인을 비난하거나 자신의 죄로 인한 자기 비하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 그리고 우리에게 통제권이 있는 시간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뿐이다. 영혼의 눈과 귀를 열어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삶의 준엄한 명령을 듣는 데 집중하도록 하자. 몸과 마음과 영혼의 생생함으로 내일 세상의 종말보다 더 중요한 오늘 나의 사과나무 심기에 땀을 흘리는 거룩하고 숭고한 노력을 기울여보자. 삶은 그렇게 함부로 살아도 되는 하찮은 것이 절대 아니다. 거듭난 자의 하루하루는 예수님의 보혈로 사신 생명의 날들이다. 이 묵묵하고 성실한 삶을 향한 노력, 사순절을 보내는 성도의 삶을 마주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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