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에리카 안더슨의 기고글인 '여성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우리가 그 현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Women are leaving the Church, but let's stop justifying it)를 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에리카 앤더슨은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작가, 저자이며 WORLD 매거진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여성들이 교회를 떠나는 비율은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다.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는 주된 집단은 남성이었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교회를 떠나고 있다. 필자는 약 6년 전부터 이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팬데믹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고, 이후 수치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 데이터를 접하게 된 계기는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위기를 조사하던 중이었다. 매년 수만 명이 사망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이른바 ‘절망의 죽음’에 해당했다. 이들은 중독, 정신질환, 붕괴된 가족 체계, 희망 상실이라는 세대 간 악순환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필자는 중독으로 시어머니를 잃은 경험이 있고, 남편과 그의 여동생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방임과 트라우마에서 무엇이 그들을 구할 수 있었을지 자주 고민해 왔다(이에 대해서는 『Leaving Cloud 9』에서 쓴 바 있다).
연구 자료를 파고들던 중, 한 가지 상관관계가 필자를 멈춰 세웠다.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중독, 우울증, 불안, 이혼, 외로움의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그들은 더 견고한 결혼생활, 더 깊은 우정, 더 나은 건강, 더 풍성한 공동체적 삶을 누리고 있었다. 또한 더 관대했고, 더 깊이 연결돼 있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틀 안에는 생명과 번성의 샘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여성들이 그곳을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필자에게 큰 상처였다. 많은 이들이 가볍게 떠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느껴졌고,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으며, 지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어야만 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열정은 빠르게 커졌다.
닻(anchor)으로서의 교회
필자는 평생 교회를 다녔다. 처음에는 찬송가와 긴 의자가 있던 할머니의 하나님의 성회 교회였고, 이후에는 청바지를 입고 예배드리는 현대적인 초교파 교회였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어머니는 언제나 언덕 위의 그 파란 건물로 우리를 데려갔다. 1990년대 복음주의 문화의 여러 한계(순결 교육 등)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이 나쁜 점보다 훨씬 많았다. 물론 그것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상처는 매우 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 점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교회는 필자에게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했을 때, 스물두 살에 새로운 도시로 이사했을 때, 워싱턴 D.C.로 옮겼을 때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찾는 것이었다. 교회는 모든 폭풍 속에서 필자의 닻이 되어주었다. 소그룹과 성경공부는 섭식장애, 우울증, 알코올 중독을 겪는 동안 필자를 떠받쳤다. 방황의 순간마다 필자는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이끌렸다.
특히 음주 문제와 싸울 때, 교회는 모든 단계에서 필자와 함께했다. 이 경험은 최근 출간한 『Freely Sober: Rethinking Alcohol Through the Lens of Faith』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성령께서 언제나 믿는 자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 가운데 함께하는 것에는 분명히 독특하고도 기적적인 능력이 있다. ‘하늘 시민’으로서 교회는 우리의 참된 고향을 지상에 구현한 대사관과 같다. 이 땅에 있으면서도 영원을 미리 맛보는 공간이다.
다시 숫자로 돌아가다
지속적인 교회 참여가 가져오는 실제적이고 측정 가능한 유익을 깨달았을 때, 필자는 모든 여성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랐다. 그 열정이 『Reason to Return: Why Women Need the Church & the Church Needs Women』을 쓰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두가 이 메시지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여성이 왜 교회를 떠나야 하는지를 정리한 불만 매뉴얼이나 선언문을 기대했다. 또 어떤 이들은 왜 성차별, 가부장제, 미혼모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런 논의가 필요한 자리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필자가 쓰도록 부름받은 책은 아니었다. 필자의 메시지는 지금도 동일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그 안에 있고, 그 일부가 되며, 그것을 더 나은 곳으로 세우도록 부르신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참고 견디라는 뜻이 아니지만, 교회를 완전히 버리라는 뜻도 아니다.
빌 하이블스나 라비 자카리아스 같은 지도자들의 스캔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때, 필자의 마음은 무너졌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희생적으로 섬기는 수많은 목회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필자가 속한 교회에서 본 모습은 이러했다. 이혼 후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한 싱글맘이 사랑과 자원으로 돌봄을 받았다. 위탁가정이 주저 없이 지원받았다.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은 과부와 부친 없는 가정이 깊이 보살핌을 받았다. 막 신앙을 갖게 된 필자의 남편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증명하는 공동체를 경험했다. 불륜, 불임, 학대를 겪은 여성들이 붙들림 받고, 이해받고, 회복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안전과 지지를 경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기대했지만 무관심이나 심지어 상처로 되돌려 받았다. 그 사실은 필자를 깊이 슬프게 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말하고 싶다. 필자가 경험한 것과 같은 건강하고 안전한 교회는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다.
현상 유지에 균열을 내다
이 메시지는 ‘여성들은 정당한 이유로 교회를 떠난다’는 진영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한 유명 작가의 팟캐스트 출연이, 그 공동체의 압력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교회를 충분히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 반발의 상당 부분은 교회 환경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로부터 나왔다. 왜 필자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게 들렸는지 이해한다. 어쩌면 그 말들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따로 구별해 들으라고 하신 여성들을 위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자주 자문했다. 여성들이 자신들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공동체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걱정하고 있는가? 교회를 가장 크게 비판하는 여성들은 과연 그것을 회복할 의지가 있는가?
『Jesus & John Wayne』, 『The Making of Biblical Womanhood』 같은 책들은 반드시 드러나야 할 진실을 밝혀냈고, 그 점에 대해 필자는 감사한다. 그러나 폭로 자체가 해답은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어딘가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종종 분노에서 멈춰 서는 모습을 본다.
한편, 새로운 데이터는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는 남성에게 책임을 돌린다. 경우에 따라 정당한 지적이기도 하다. 온라인에 퍼진 독성 강한 ‘테오브로(theobro)’ 문화의 존재를 필자도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런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지금은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로 남성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남성의 영적 회복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들의 귀환이 여성들의 귀환까지 이끌 수 있느냐는 점이다.
‘교회 상처’를 탈출 전략으로 삼는 것의 한계
최근 남성들에게 책임을 촉구하는 글에서 브랜든 쇼월터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상처, 비난, 성차별, 무시에 의해 “더 이상 교회에 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썼다. 그의 리더십을 존중하지만, 필자는 교회 참여가 불가능해진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분명히 하자면, 어떤 여성들은 실제로 성차별, 침묵 강요, 혹은 해를 경험했다. 그들의 경험은 중요하다. 필자는 그들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이 소명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각 지체를 몸에 두셨다”(고전 12:18).
우리는 교회에서 빠져나갈 선택권을 갖지 않는다. 편의 때문에도, 불편함 때문에도, 심지어 타인의 죄 때문에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한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이는 더 건강한 교회를 찾으라는 의미이지, 교회 자체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고통은 종종 우리가 가장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틈타는 지점이다.
실망이나 기능 장애에 대한 해답은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다. 때로는 특정 교회를 떠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때로는 어려운 대화, 새로운 경계,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회 전체를 떠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은 결코 올바른 답이 아니다.
우리가 속한 더 큰 이야기
현대 삶의 혼란인 소음, 정보 과잉, 끝없는 선택지 속에서 우리는 삶이 오직 ‘나’에 관한 것이 아님을 쉽게 잊는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한 더 큰 계획을 세우셨고, 교회는 그 중심에 있다.
우리는 의미 없는 우주를 떠도는 원자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속에 의도적으로 창조된 참여자들이다. 이해할 만한 이유로 교회를 떠난 많은 여성들은 당시 안전하게 돌아갈 길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떠나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필자는 묻고 싶다. 우리는 어떻게 치유가 필요함을 아는 그 몸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씨름하고 있는가? 그리고 남성들은, 그 귀환을 어떻게 목자처럼 돕고 있는가?
교회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아니다. 교회는 모든 것이 질서 잡히는 구조 그 자체다. 그 기초가 무너지면, 다른 모든 것도 함께 흔들린다. 교회는 싸울 가치가 있다.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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