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커친스 박사
스티븐 커친스 박사. ©stephencutchins.com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은 스티브 커친스 박사의 기고글인 '우리는 AI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찾으려는 일을 멈춰야 한다'(We must stop seeking God's voice in AI)를 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커친스 박사는 미국 남부 복음주의 신학교(SES)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Center for Innovative Training, Truth That Matters 단체의 전무이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오늘날 우리는 답이 즉각적으로 도착하고,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으며, 안내는 언제나 하나의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점점 기술을 단순한 정보 수단이 아니라, 관계와 정체성, 목적과 도덕성에 대한 명확함을 얻기 위한 도구로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계에서 분별력은 쉬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

확신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가장될 때

몇 년 전, 필자가 섬기던 교회의 사무실로 한 남성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시간이 있는지 묻기에, 커피 두 잔을 따르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허락을 받아 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고, 필자가 존경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결혼 상태에 대한 설명을 조심스럽게 듣고 있던 중, 그는 필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제게 아내와 이혼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필자는 물었다. “하나님께서 정확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께서, 제가 몰래 만나고 있는 여성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내와 이혼하라고 하셨어요.”

필자는 다시 물었다. “아내를 떠나기 전에 정말 확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과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목회 현장에서 드문 일이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확신을 하나님의 확증과 혼동하려는 유혹은 목회자를 포함한 모든 신자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문제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의 책임을 떠안고, 말씀하지도 않은 말의 주인으로 종종 오해받는다. 이는 하나의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언제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분별력은 긴급함이나 진정성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신학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계시하신 성품과 모순되지 않으신다.

신학적 거울로서의 기술

최근 인공지능에 관한 논의는 의외로 많은 것을 드러낸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기술의 실패라기보다 신학의 실패이며, 역량의 위기가 아니라 형성의 위기다.

2024년 7월, 글루(Gloo)의 연구진은 ‘플러리싱 AI 벤치마크’를 사용해 28개의 주요 AI 모델을 평가했다. 인간 번영의 대부분 지표는 중간 수준의 점수를 기록했지만, ‘신앙과 영성’ 영역은 테스트된 모든 시스템에서 압도적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 점수는 다른 영역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처럼 일관된 격차는 기술적 한계라기보다 구조적 결핍을 시사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신앙은 지능이나 정보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관계적 응답이며, 신뢰와 도덕적 책임을 포함한다.

아무리 막대한 연산 능력이라 해도 신앙을 생성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에서 신앙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신앙이 애초에 인식되고, 모델링되고, 전달되기 어려운 것이 되었는가이다.

일부는 AI가 신앙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핵심을 놓친 해석이다. AI는 신앙을 침식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훈련시킨 문화 속 신앙의 얕음을 그대로 비추고 있을 뿐이다. 사회가 생산성과 효율성에 투자한 영역에서는 탁월하게 작동하지만, 형성이 방치된 영역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긁어 모으거나, 요약하거나, 확장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 형성의 장기적 침식

장기 연구는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지난 25년 동안 신앙의 중요성은 다른 어떤 기독교적 헌신보다도 가파르게 하락했다. 실제로 신앙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비율은 크게 감소했으며, 신자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약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인공지능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는 왜 우리 문화의 언어로 훈련된 시스템들이 신앙을 의미 있게 모델링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동시에 이야기는 단순한 붕괴로만 끝나지 않는다. 최근 자료는 특히 젊은 성인들 사이에서 영적 호기심의 회복과 일부 신앙 지표의 완만한 안정화를 시사한다. 상황은 복합적이며 아직 전개 중이다. 그렇기에 형성의 문제는 더욱 시급하다.

의도 없는 형성

AI가 정보의 영역을 넘어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이 시급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이 시스템들은 점점 더 듣고, 반응하고, 공감한다.

소비자 안전 경고는 AI 기반 아동용 장난감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부적절한 콘텐츠가 아니라, 이 기술들이 관계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장난감은 제한된 부모 감독 속에서 아이의 말을 듣고 반응하며 적응하고, 과거에는 부모와 공동체, 도덕 교육이 차지하던 형성의 공간을 점유한다.

신앙 형성에는 의도가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존재다. 아이의 삶 속에 지속적으로 말을 거는 존재가 무엇이든, 그것은 신뢰와 상상력, 정체성을 형성한다.

문제는 이제 기술이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보다 더 의도적으로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다른 무엇이 있는가이다.

여러 전통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술 발전이 인간의 존엄성, 도덕적 형성, 영적 깊이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경고해 왔다. 이는 기술 자체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지혜가 혁신을 다스려야 한다는 상기다.

디지털 시대에 지혜를 회복하다

성경은 결코 지혜를 정보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지혜는 관계적이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에 맞게 삶을 조율하는 데서 흘러나온다.

이것이 AI의 신앙적 한계가 중요한 이유다. 우리는 기계가 믿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계는 왜 신앙이 애초에 모델링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측정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삶이라 해도, 영적으로는 공허할 수 있다. 이 시스템들이 드러내는 결핍은 비난이 아니라 자기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은 우리의 결정을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또한 분별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디지털이든 아니든, 그 무엇인가에 위탁하는 데서 시작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셨는지를 알고 기뻐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일관되시며, 변하지 않으신다.

디지털 시대에 신앙을 회복하는 길은 더 느린 실천을 요구한다. 주의 깊게 읽는 성경, 인내로 드리는 기도, 공동체 안에서 배워가는 분별이다.

AI가 신앙에 약하다는 사실은 AI의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신앙이 언제나 요구해 왔던 것을 다시 회복하라는 초대다. 시간, 신뢰,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