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해리스 박사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의 기고글인 ‘새해를 맞으며 드는 한 가지 생각: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사슬을 알아차리지 못한다’(A thought for the new year: those who don’t move, don’t notice their chains)를 최근 게재했다.

해리스 박사는 컨설팅 회사인 Avenir Leadership Institute를 이끌고 있으며 이 단체는 전 세계에 필요한 리더 양성을 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는 최근 수면 검사를 받았다.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전극들이 몸 곳곳에 부착되어 다리 경련부터 수면무호흡, 급속 안구 운동, 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조사했다.

방의 온도는 이상적으로 맞춰져 있었고, 배경에는 부드러운 화이트 노이즈가 흐르고 있었지만 잠들기는 매우 어려웠다. 크리스마스 칠면조처럼 꽁꽁 묶인 상태였으니, 결과가 형편없게 나오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면 장애를 진단받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움직이다가 무언가를 망가뜨리지는 않을 것이며, 전극이 떨어지면 직원이 들어와 다시 붙여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이 상황을 견디는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가만히 누워 모든 것이 정상인 척하는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솔직히 말해, 이 시도가 대성공이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경험은 이 글의 제목이 된 한 문장을 떠올리게 하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사슬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깊이 있는 통찰로, 갇힘, 정체, 억압, 세뇌 등 다양한 철학적 성찰로 확장될 수 있다. 여기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세 가지 통찰만 다루고자 한다.

통찰 1

현상 유지를 질문하지 않는 한, 당신은 내부자에 머무르게 된다. 다수의 합의에 그냥 따르기만 하면, 시험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작동하지 않는 그 사슬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예수님도 자주 이 지점에 부딪히셨다. 오병이어 사건 이후 그의 인기는 치솟았지만(요 6:14-15), 값비싼 제자도를 요구하자 무리는 순식간에 흩어졌다(요 6:60-71).

율법을 존중한다고 말할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 율법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자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환영받았지만, 원수 또한 이웃일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상황은 달라졌다.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님을 적으로 만들었고, 십자가는 그가 끊임없이 현실을 재구성한 데 대한 잔혹한 거부를 보여주었다. 예언자는 대개 소속되지 못하며, 때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계를 밀어붙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사슬을 인식하게 된다.

통찰 2

‘사슬’이라는 단어는 감정적으로 들리지만, 그 의미는 훨씬 긍정적으로 경험될 수도 있다. 복음서 역시 이를 보여준다. 누가복음 15장 11–32절의 탕자를 떠올려 보라. 그는 자신의 부당한 반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강한 붙들림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

사랑의 사슬은 그의 가장 낮고 어두운 순간에도 그를 붙들었고, 돌아올 용기를 복돋아 준다. 그가 저지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의 집에 속한 존재였으며, 사랑의 사슬이 그를 다시 이끌었다.

때로는 멀어져 볼 때에야 우리가 얼마나 단단하고도 아름답게 붙들려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을 굳게 붙들라고 부름받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힘보다 훨씬 강하게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다. 은혜의 손아귀 안에 있는 것은 참으로 복된 ‘사슬’이다.

통찰 3

움직이기 시작할 때 사물이 다르게 보이다. 오랜 비활동은 시야를 제한하고, 한 지점에서만 세상을 보게 만들다. 위치를 바꾸면 관점도 바귄다. 편안했던 가정들은 종종 게으르고 성찰 없는 생각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모든 여정은 위험을 수반하며 그 과정에서 당신은 크게 변할 수도 있다.

자신의 사슬이 발걸음을 붙잡고 있음을 깨달을 때, 선택이 필요하다. 조용히 여정을 포기할 것인가? 그렇게 하면 사슬은 더 이상 당기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자유로워질 방법을 찾을 것인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사슬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 자유의식은 환상에 불과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또 한 번의 형편없는 밤잠이 필자를 다소 지치게 한다. 검사 중에 전극 사슬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세상에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로 지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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