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돈으로 행복을 조금이라도 살 수 있을까?’(Can money buy just a little bit of happiness?)를 1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의 아내는 컨트리 음악을 열렬히 듣는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필자는 아직 그녀와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차 안에서 아내가 컨트리 음악을 듣고(그리고 노래까지 부르며) 있을 때, 필자는 종종 가장 가까운 절벽을 찾아 차를 몰고 가고 싶은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는다. 잠시일 뿐이고, 게다가 성경은 필자에게 이렇게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라”(엡 4:2).
그런데 문제는 장거리 여행이다. 우리는 최근 테네시주 개틀린버그로 주말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는 약 173,824개의 컨트리 음악 방송국이 있다. 사실, 표준 라디오로 다른 음악이 나오는 걸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여기, ‘돌리우드(Dollywood)’의 고향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 필자는 한 컨트리 노래를 들었다. 웃음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신학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크리스 잰슨(Chris Janson)이라는 가수가 부른 곡으로, 다음과 같다: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분명 부자가 되고 싶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건 없다 부자 삼촌이 유산을 남겨주길 바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워렌 버핏처럼 돈더미 위에 앉아 있길 바란다 모두가 말한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이다.”
노래는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배는 살 수 있다 배를 끌 트럭도 살 수 있다 은탄으로 냉각된 예티(Yeti) 110도 살 수 있다 그래, 모두가 말하는 걸 안다 돈이 모든 걸 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는 살 수 있다.”
제목은 “Buy Me a Boat”이고, 다음 구절에서 약간 신학적인 고민을 담는다“ “나를 레드넥, 백인 하층민, 블루칼라라 부르지만 몇 백만 달러만 있으면 그걸 바꿀 수 있다 돈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들 하지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다고도 한다 아마 맞는 말일 거다 하지만 여전히 멋지게 들린다” 결국 돈으로 배를 살 수 있다는 가사이다.
물론, 돈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사랑이 모든 악의 뿌리임을 우리는 안다(딤전 6:10). 돈은 거의, 혹은 전혀 사람의 성품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돈으로 행복을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잘못일까?
번영하는 영혼과 행복
논쟁의 한쪽 끝에는 ‘가난을 숭배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돈을 거부하며 잠언 기자의 입장을 체화한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 23:4-5).
반대편에는 번영 복음을 강조하는 설교자들이 있다. 그들은 요한삼서 2절을 마치 신의 전쟁 도끼처럼 휘두르며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범사에 잘되고 건강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니, 네 영혼이 잘됨 같이.” 그런데 실제로 영혼이 번영하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할까? 일부 연구는 그렇다고 말한다.
2020년 연구 “Is wealth associated with depressive symptoms in the United States?”는 이렇게 보고했다: “가족 저축이 적은 사람은 가족 저축이 많은 사람보다 우울 증상을 겪을 확률이 1.49배 높았다. 성별, 연령, 인종, 교육, 결혼 상태, 가족 규모, 가족 소득을 통제한 결과다. 모든 소득 수준에서 저축이 적은 그룹은 더 높은 우울 증상을 보였다.”
이유는 다양하다. 일반 생활 필요를 충족시키는 스트레스 감소, 선택권과 자유, 재정적 돌발 상황 대처 능력, 의미 있는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기회 등이 포함된다. 물론, Fast Company 기사에서 지적하듯, 예수님이 말한 “땅에 있는 보물”(마 6:19)에서 오는 일시적 행복과 내적 성취감은 다르다. “삶의 만족은 행복과 다르다. 행복은 전반적인 삶의 느낌이 아니라 특정 순간의 감정이다. 흥미롭게도 소득은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돈이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성경은 이런 삶의 만족을 ‘만족(contentment)’이라 부른다. 바울은 두 편지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6-8).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돈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일과 재정적 성취의 결실을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만족하지 못하나, 하나님이 주신 것과 재능, 그리고 즐길 능력은 기쁨의 선물이다”(전 5:10, 18-19)
마지막으로 바울은 돈을 신이나 희망으로 여기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시선을 향하라고 가르친다. 이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
결국, 전도서 기자와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돈으로 얻는 행복은 괜찮다. 하지만 그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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