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지도자의 덕목

정성구 박사
정성구 박사 ©기독일보 DB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일을 두고 일반 대중들은 싸늘하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자칭타칭 후보자로 나서는 것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내놓으면서 아무도 찍을 자가 없다는 말들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과 반대가 쓰나미처럼 지나가더니, 불법 재판으로 탄핵되자, 대중들의 관심은 엉뚱하게 변질되었다. 정치는 생물이라던가? 민심은 아침저녁으로 변하고, 후보자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카르텔들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의 바람은, 참으로 멋진 대한민국 최고의 지도자인 대통령을 뽑아서 통일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필자는 앞으로 몇 차례 걸쳐 ‘최고 지도자론’을 써 보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일찍이 최고 지도자론을 쓰신 분은 사실 따로 있다. 그는 한국교회의 선교 운동의 대부였고, 외국에서는 Mr. Mission으로 불렸던 조동진(趙東震) 박사였다. 1992년 조동진 박사는 ‘최고 지도자론’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본인 자신이 정성스럽게 싸인해서 필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가장 엄중한 시기에 특히 국가 최고의 지도자 선출을 앞두고 조동진 박사의 책을 다시 읽었다. 사실 최고의 지도자는 대통령뿐 아니고, 기업의 CEO, 그리고 대학의 총장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조동진 박사는 목사요, 교수이면서 연설가요, 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선교 한국을 꿈꾸는 전략가였다. 그의 번뜩이는 예지는 항상 한세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필자는 거의 반세기 동안 그와 가까이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고, 그의 비전과 꿈은 한국 교회를 ‘세계 선교의 중심 국가’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가장 정통신앙을 가졌으면서도 생각을 달리하는 분들과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지도자였다. 그의 ‘최고 지도자론’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는 지도자의 홍수 시대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의 공백(空白) 시대인가? 지도자란 힘 있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의(義)로운 사람인가? 만약 지도자가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이 땅 위에 얼마든지 있다. 또 지도자란 대중의 인기나 여론의 각 광을 한 몸에 받으면서 덮어놓고 위로 오르려는 사람인가? 만약 이렇게 이름이 알려진 지도자라면 이 땅에 이미 있는 그런 사람의 수만으로도 지도자는 모자라지 않는다. 또한 지도자란, 스스로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시대나 그 사회가 기대하는 인물의 출현을 말하는가? 지도자란, 세습적으로 계승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훈련과 교육으로 습득하거나 노력으로 성취되는가? 또 지도자란, 민중을 지배하는 대권(大權)을 장악하고 윗자리에 앉아 통치권자로 군림하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자와 눌린 자의 해방자요, 구조적 모순과 사회악을 개혁하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창조자인가? 하는 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결국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역사와 문화와 정치와 삶의 전부를 조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결국 최고 지도자는 인간의 본성과 운명, 그리고 역사의 처음과 나중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자는 참 지도자일 수가 없다. 인간의 교만과 궁극적 진리는 항상 충돌한다. 역사의 종말을 예언할 수 없는 자가 한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지도자라고 모든 것을 고루 갖출 수는 없다. 하지만 진리만은 그의 인격에 중심에 있어야 한다. 진리를 품지 않는 지도자의 사회적 정의를 위한 투쟁은, 참된 투쟁이 아니고, 하나의 야심이고, 욕망이며, 교만이다.

그러므로 국가 최고의 지도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의 근본적 문제는 ‘죄’와 ‘악’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백성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도자 자신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 안에 있는 죄악과의 투쟁에서 승리의 확신이 없는 자는 사회와 나라의 문제를 옳게 인식할 수 없다. 때문에 최고 지도자란, 인간 모두가 스스로의 책임을 지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를 향한 횃불을 들고 민중 앞에 달리며, 빛을 비추는 슬기와 진리와 공의(公義)로 연단 된 예언자적인 인물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인물을 역사의 맨 앞자리에 앉게 한 일이 없다. 인간은 본래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이기에 인간 스스로는 바른 정의에 이를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의 윤리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불완전하기에 민주주의를 필수적으로 보았다. 즉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은 필연적으로 자기 이익과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통해 권력의 집중을 막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고려하며 권력을 분산하고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체계가 민주주의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타락한 인간의 집단주의와 표로 나라를 망가뜨렸다. 최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인간 자신의 철저한 부패와 죄악을 깨닫고, 오직 진리 편에 서는 지도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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