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에서 편집한 『세계를 위한 교회』에서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교회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거나 정신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 자신이 이 세상, 즉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사랑의 표현의 대상이 되는 이 세상의 한 부분임을 깨달을 때만 참 교회가 될 수 있다.
2. 교회는 세상으로 하여금 참 본질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세상과의 격리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불복종하는 것이요 교회 자체를 파멸로 이끄는 것임을 알고 세상 속에 현존하는 것이다.
3. 교회가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이 교회 안에서만 되어지지 않음을 깨달을 때, 교회는 하나님이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일하시는 징조 (signs)를 식별하기 위해 언제나 깨어 있는 자세가 될 것이다. 비 기독교인들과의 겸손한 대화와 교제가 없이는 참 교회일 수 없다. 이 대화에서의 교회의 역할은 경청하고 수용할 준비를 갖춘 파트너의 역할이다.
세상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다소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전통적인 신학에서 세상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죄를 물먹듯이 짓는 무리들이며 머지 않아 멸망할 곳으로 간주되면서, 세상은 구원을 받을 때만 소망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협의회의 신학에서 세상은 아주 다르게 이해된다. 앞서 보았듯이 세상은 교회보다 우선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교회와 세상을 분리할 수 없고, 세상 안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므로 세상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겸손히 세상과 대화를 나눌 준비를 하여야 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견해로 인해 이제 ”하나님-교회-세계“의 도식은 ”하나님-세상-교회”로 바뀌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1차적 관계는 세상과의 관계이며, 하나님의 계획의 구심점은 세상이지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협의회는 강조한다. 협의회가 이처럼 세계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인 견해를 갖는 반면 회심으로 인한 교회의 성장에 대하여는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지니면서, “전통적인 복음전도에서 회심에의 일방적 강조는 교회 출석, 교인으로서의 사고와 행동 등과 같은 예견할 수 있는 결과를 전제하는 경향을 지녀왔다. 이러한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복음 전도는 안에 있는 사람 (insider) 편에서 밖에 있는 사람 (outsider)을 안으로 초청해 들이는 개종 (proselytism)의 형태가 되어 왔다."라고 말하면서 전통적인 교회 성장에 대하여는 비판적인 평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회 이해에서 세상에 대하여 지나치게 부정적인 이해를 가지고 높은 담을 쌓고 세상의 변혁에 무력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러한 것을 고치기 위하여 세상에 대하여 긍정적인 이해를 가지고 세상과 하나 되는 교회를 강조하는 협의회의 교회관은 일정 정도 기여점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하여 지나치게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세상과의 경계선을 허무는 것은 자칫 잘못된 길로 오도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또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하여 교회를 도구로 택하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과 세상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죄를 지었다는 것은 엄연히 구분지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아버지를 떠난 죄인이라는 것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과 같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세상이 하나님을 대항한 죄의 무리들임도 동일하게 강조해야 한다. 만일 전자만을 강조할 경우 자칫 세상이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보다는 사랑받는 대상인 세상의 고통을 해결하고 인간화를 이루는 것에만 교회 사역의 강조점을 두는 방향으로 오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세상을 지나치게 긍정적인 시선으로만 보면서, 세상과 교회의 경계선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경우 사람들은 교회에 나올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교회와 세상이 차이가 없다면 교회나 세상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는 것이고, 세상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면 굳이 힘들게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회의가 들 수 있을 것이다. 배는 분명 물에 있어야 하지만 배가 배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배는 물과 분명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배와 물이 하나가 되어버릴 때 배는 더 이상 배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협의회의 교회이해에서 세상과 하나 되는 교회관은 분명 장점이 있지만 자칫 교회의 정체성을 약화시켜서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역량 자체가 약화되어버릴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릴 때 교회가 세상에 참여적이 되는 강점이 분명히 있지만, 동시에 교회의 정체성 자체가 사라지고 결국 교회는 세상을 제대로 섬길 수 없을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을 이스라엘의 정체성 유지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속에서 잘 볼 수가 있다. 이스라엘의 종국적인 목적은 열방을 섬기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초기 단계에서 이스라엘이 이방과 섞이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셨다. 먼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분명히 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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