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국교회사의 배경되는 방대한 『미국기독교사』 번역하셨습니다.
유강(柔剛)(고인의 아호, 雅號)선생님께서는 프랜시스 쉐퍼의 『이성에서의 도피』(생명의 말씀사, 1970), 『도피하는 현대인』(생명의 말씀사, 1972), 오토 베버의 『칼빈의 교회관』(합신대 출판부, 2008) 등 중요한 번역서를 내셨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 대작 번역서, 『미국기독교사』는 한국교회사 배경 자료가 되는 크나큰 업적입니다. 이는 고인이 행하신 업적 중에 중요한 하나입니다.
유강(柔剛)선생님은 미국 종교사 분야의 전설, 시드니 E. 알스트롬(Sydney E. Ahlstrom)이 10년간 집필한 『미국기독교사』(제2판)(A Religious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Yale University 1972)를 단독 번역 출간(복있는 사람, 2019) 하였습니다. 당시 애틀랜타(Atlanta)에 가 계신 고인은 출판사에 연락하여 1581쪽이나 되는 방대한 번역서를 저에게 보내어 주셨습니다. 유강은 번역의도를 다음같이 피력하고 있습니다: “현직교수들이 시간을 내지 못할 것을 감안하여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10년간의 번역과 3년이상의 편집과 감수작업을 통하여 완성한 대작품”입니다. 옮긴이의 글에서 신학적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교파 교회의 신앙유형과 전통을 알려면 교회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한국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는 한국교회의 역사뿐 아니라 기독교 교회사를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미국교회의 역사는 알아야할 필수과제다. 한국의 교파 교회들이 주로 미국의 여러 교파 선교사들의 선교를 통해 세워졌기 때문이다”(미국기독교사, 22쪽).
유강(柔剛)선생님이 번역한 책은 지금까지 미국 기독교사 전체를 다른 통사(通史) 중 고전의 반열에 오른 미국교회사의 표준적인 교과서입니다. 이 책에서 초기 식민지 개척의 개관, 뉴 잉글랜드 청교도 운동, 주류와 비주류의 종교운동, 대각성운동, 남부에서 확산되는 복음주의, 노예제도, 남북전쟁(1861-1865), 자유주의 신학괴 사회복음이 다루어지고, 이 시기에 살았던 에드워즈, 라우센부쉬, 니버 형제들의 행적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2천년 유럽 기독교에 비해 미국 기독교 역사는 단지 250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미국 기독교는 유럽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하여간 개신교로서 전통적인 교파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발생한 새로운 교파들과 분파들이 공존합니다. 그리하여 미국 기독교는 지극히 복잡하고 역동적인 구조와 지형을 형성했습니다. 동시에 미국 기독교는 미국 역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하였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기독교역사를 학문적 깊이, 문화적 맥락, 그리고 윤리적 통찰에 근거하여 포괄적이고 균형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1960년대의 미국을 혼란의 시대로 규정하며 마감합니다. 이 책은 미국인의 종교사로서 미국의 모든 교파들과 종교를 아우르는 탁월한 역사서로 인정받고 있기에, 고인은 한국교회사의 연구배경으로 이 대작을 번역하시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평생 교회사를 연구하고 가르친 고인의 수준 높은 번역과 친절한 안내도 들어 있습니다.
한국교회사 배후에는 선교한 미국교회사가 반영되어 있으며 한국교회의 형성과 발전 배후에는 미국교회의 심대한 영향이 존재합니다. 미국은 20세기에 소련연방이 해체되게 하고 21세기에는 유일한 강대국으로서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전쟁에서 보듯이 세계의 현재와 미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은퇴후 서재(書齋)에서 10년 넘게 이 저서 번역에 보내신 것은 우리 후학들로 하여금 한국교회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실 의도로 봅니다. 고인의 신학적 노고는 이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길이 간직될 것입니다. 고인은 이제 기독교이후시대(post-Christian Era)를 맞이하는 한국 기독교인들과 교회사가들이 한국교회의 역사를 더 넓은 미국 기독교사의 맥락에서 보면서 다가오는 21세기를 맞이하라는 과제로 이 번역서를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셨습니다. 복음주의적 개혁신학이란 거대한 시대적 종교사의 흐름에서 도피하지 않고 그것을 거스려 숨어 있는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어야 한다는 학자적 통찰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5. 말기암 선고에도 흩트려짐 없는 의연한 신앙과 영생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유강(柔剛) 선생님은 2024년 코로나-9로 인한 장녀의 별세(2024.4.20.) 이후 필라델피아 도시선교사역을 하는 아들 김형일(앤디) 목사 곁으로 거처를 옮기셨다가 향수(鄕愁)를 이기지 못하고 말년생활의 보다 안정적인 삶과 후학들을 비롯한 많은 지인들이 있는 고국으로 2024년 7월 17일 귀국하셨습니다. 고인의 귀국 및 한국 수동시니어 타운 입주에는 총신대 시절 수(秀)제자인 강경림 박사(안양대 신학과 명예교수 및 한국복음주의 역사신학회장 역임), 이은선 교수(안양대 신학과 명예교수)와 제자 목회자들의 헌신적인 섬김과 돌봄이 있었습니다. 저는 고인 유강 선생님과 독일 유학시절 시작된 50년간의 끈끈한 신앙과 학문적 교제를 삶을 마감하기까지 나누었습니다.
유강 선생님은 시한부 삶이라는 중병 가운데서도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위치한 권영태, 고선이 목사(기독교학술원 수사생도)가 전원 목회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수동면 카페교회에서 5차례 대담 강의를 했습니다. 본인의 저서 『한국교회사』(증보판)를 중심으로 질의응답형식으로 참석자들과 신앙적인 대담을 가졌습니다. 기독교학술원 수사과정 섬김이 권영태 목사는 “교회사 대가의 강의 및 질의 응답을 통하여 고인으로부터 진정한 복음주의 개혁신앙의 진수를 배울 수 있었다”고 존경을 표명하였습니다. 시한부 암판정을 받은 후에도 고인은 흐트려짐 없이 대처하고 다섯 차례 강의를 강의해주셨고 “복음주의 대학자다운 의연한 태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고인께서 보내어온 의사진단에 대한 메일을 받고 2026년 6월 8일 고인에게 ‘프랑스의 무신실존주의사상가인 사르트르(J. P. Sartre)의 예를 들어 그가 폐수종으로 시한부 삶이라는 의사의 판정을 받았을 때 철학자다운 기백은 사라지고 “왜 자신이 죽어야하는 지 대성 통곡 절규했어요. 그는 가야할 곳이 없으니 발버둥쳤겠지요. 우리에게는 이 세상 끝날 때 주님의 영원하신 품이 있으니 소망과 즐거움과 기다림이 있습니다”고 글을 보냈습니다.
이에 고인은 찬송가 188장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되어서 내가 들어갑니다.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받지 못하네. 쉬임없이 힘쓰고 눈물 근심 많으나 구속못할 죄인을 예수 홀로 속하네. 빈손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나를 씻어주소서. 살아 생전 숨쉬고 죽어 세상 떠나서 거룩하신 주 앞에 끝날 심판 당할 때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라고 찬송구절을 쓰시고 이어서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를 쓰시려고 하시면서 ”찬송가 서두가 떠오르지 않네요....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내 기쁨 넘치리. 고3때 회개하고 감격에 겨워 찬송을 다 부르지 못하곤 했습니다. 이제 그날이 다가 왔네요.” 하시며 의연하게 “가야할 본향이 있으니 먼저 갑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메일을 받고 ‘복음주의 개혁신앙이란 이런 것이다’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제 고인의 육신은 수목장으로 화장되어 재(滓)로 용인평온의 숲에 뿌려졌으나 고인의 영혼은 천국에 입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도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 그리고 부활시 다시 새로운 천상의 몸으로 부활하여 형언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재회하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
2026년 7월 19일, 동료요 후학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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