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프랑스 하원이 말기 환자의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현지 기독교계가 이를 생명 윤리의 파탄으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고 7월 17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15일 표결을 거쳐 찬성 291표 반대 241표로 조력 사망 법안을 최종 가결했다. 앞서 프랑스 상원에서 세 차례나 부결되었던 이 법안은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질환을 앓는 성인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법안 통과로 프랑스 내 안락사 합법화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상황이다.
종교 의료기관 양심의 자유 침해 및 위헌 논란 부상
CDI는 프랑스 조력 사망 법안이 하원 문턱을 넘자 현지 기독교계는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고 밝혔다. 프랑스 복음주의 연맹(CNEF)의 법무 책임자인 낸시 르페브르는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와 제라르 라르셰 상원의장이 법안의 위헌 소지를 우려해 이를 헌법위원회에 전격 회부했다고 밝혔다.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둔 일부 정치권 인사들 역시 당선 시 해당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예고하며 이번 법안은 거센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현지 기독교계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기관 차원의 진료 거부권이 철저히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르페브르 책임자는 법안에 명시된 양심에 따른 거부권이 의료진 개인에게만 국한될 뿐 종교적 이념으로 설립된 의료 기관이나 단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병원이 환자에게 조력 사망 절차를 제공하지 않기로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모호해졌음을 의미하며 심각한 양심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 기독교계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는 환자들에게 죽음을 돕는 극단적인 의료 개입 대신 호스피스 완화 의료와 헌신적인 가족 및 교회의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생명을 평화롭고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취약계층 향한 죽음 강요 우려 및 호스피스 완화 의료 촉구
하원 표결 직후 프랑스 복음주의 연맹은 생명의 끝 윤리적 단절이라는 제목의 공식 성명을 내고 법안 가결을 강력히 규탄했다. 연맹은 이번 프랑스 조력 사망 법안 통과가 국가적인 윤리적 인류학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평가하며 생명 경시 풍조의 확산을 우려했다. 병들고 노쇠한 사람의 존엄성은 신체적 활동 능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들을 끝까지 보호하고 존중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또한 연맹은 법안 찬성 측이 주장하는 형제애의 개념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진정한 형제애는 고통받는 이들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곁을 지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연맹은 조력 사망 합법화가 가족이나 국가 복지 시스템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은 취약계층에게 결국 죽음을 선택하도록 무언의 도덕적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의 법에 약물 투여를 통한 죽음을 명문화함으로써 사회를 지탱해 온 생명 앗아감 금지의 원칙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프랑스 복음주의 연맹은 국가 차원의 공평하고 신속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 시스템 확충을 강하게 요구했다. 연맹은 현재 많은 지역에서 제대로 된 완화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을 명백한 사회적 불의로 규정하며 정부의 책임 있는 지원을 촉구했다. 또한 전례 없는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한 의료 종사자들의 양심적 진료 거부권을 타협 없이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절차적 허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유럽법정의센터(ECLJ) 그레고르 퓌팽크 소장은 현행 프랑스 조력 사망 법안이 환자의 명시적인 서면 요구서나 제삼자 증인 없이 단 한 명의 의사 소견만으로 사망 절차가 진행될 수 있는 구조적 맹점을 안고 있다며 한 명의 의사가 환자의 생살여탈권을 쥐게 되는 절차적 위험성을 엄중히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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