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은다바 마자바니의 기고글인 '외국인 혐오와 그리스도를 닮은 긍휼을 향한 부르심'(Xenophobia and the call to Christ-like compassion)을 7월 18일(혅지시각) 게재했다.
은다바 마자바니는 로즈뱅크 유니언 교회의 부목사이자 더 가스펠 코얼리션 아프리카의 이사회 멤버다. 그는 세계복음주의연맹 국제이사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올리벳대학교 진젠도르프 박사과정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성경의 명령은 국경 안에 낯선 이들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사회를 향해 분명하고도 긴급한 메시지를 던진다. 오늘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 오래된 말씀은 제노포비아, 곧 외국인 혐오라는 지속적인 위기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외국인을 향한 폭력과 배척, 의심은 경제적 압박과 통치의 한계, 도덕적 책임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일부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이 문제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한 지렛대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이 문제는 단순한 정치적·경제적 사안을 넘어 지극히 영적인 문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대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압박에 짓눌린 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직면한 사회·경제적 과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높은 실업률과 불평등, 범죄, 부패, 제한된 자원은 지역사회에 막대한 부담을 안기고 있다. 많은 시민은 일자리와 주거,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 힘겨운 현실을 견디고 있다.
이처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합법 체류와 불법 체류를 모두 포함한 이주 문제는 폭발 직전의 뇌관이 됐다.
외국인들은 흔히 부족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깊은 반감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현지인과 이주민 모두가 연루된 폭력 사태를 촉발한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시위 단체 가운데 하나인 ‘마치 앤 마치(March and March)’는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6월 30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라고 경고했다. 안타깝게도 이 단체 지도자 중 한 명인 안딜레 음부옐와 솜그사다는 7월 4일 자택 밖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허술한 국경 관리와 정부 시스템의 행정적 비효율성에 대한 우려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많은 시민은 이민 정책이 일관되게 집행되지 않고 있다고 느끼며, 이는 좌절감과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분노가 가장 취약한 외부인들을 향할 때 사회의 도덕적 기반은 무너진다. 외국인을 향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해결책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분열을 더욱 깊게 하고 두려움의 악순환에 기름을 부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아프리카의 전통 철학 우분투가 도전받는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외국인을 향한 편견과 두려움, 증오를 뜻하는 제노포비아는 인간의 보편적 연대와 존엄성,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우분투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환대에 대한 성경적 비전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낯선 이들을 긍휼히 대할 것을 일관되게 촉구한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히브리서 13:2),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레위기 19:34)
예수님 역시 사회적·문화적 경계를 넘어 소외된 이들을 기꺼이 맞아들이심으로 이러한 윤리를 몸소 보여주셨다. 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도 한때 피난민이셨음을 일깨워준다.(마태복음 2:13-15) 또한 신자로서 우리의 궁극적인 정체성 역시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사실을 말한다.(히브리서 11:13)
이러한 신학적 진리는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바꾼다. 외국인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이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증오를 거부하고 화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국적이나 법적 지위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정당한 우려와 신실한 응답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우려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경 관리와 자원 분배, 법 집행은 매우 정당한 문제이며 책임감 있게 다뤄져야 한다.
정부는 질서와 정의를 유지할 책임이 있다.(로마서 13:1-4) 실효성 있는 이민 제도를 구축하는 일 역시 정부의 중요한 의무다.
그러나 기독교적 응답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반드시 정의와 자비를 함께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폭력과 희생양 만들기, 차별은 복음뿐 아니라 헌법적 가치에도 어긋난다.
신실한 태도란 훌륭한 통치의 필요성과 급진적인 긍휼로의 부르심이라는 두 진리를 긴장 속에서 함께 붙드는 것이다.
교회의 역할
이 위기 속에서 교회는 독특하고도 예언자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성령으로 빚어진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분열이 극복되는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갈라디아서 3:28)
교회는 먼저 환대와 인간의 존엄성, 정의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의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편견에 도전하고, 외국인을 향한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를 길러야 한다.
또한 지역교회는 피난처이자 지원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무료 급식과 법률 지원 연계, 지역사회 통합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교회는 화해자로도 부름받았다. 현지인과 이주민 공동체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두려움을 줄이고 신뢰를 쌓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정치적 비당파성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정책을 지지하고, 당국이 정의로운 통치의 책임을 다하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교회의 몫이다.
정부의 책임
정부는 제노포비아의 구조적 뿌리를 제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효과적인 이민 관리와 명확한 정책, 효율적인 문서화 시스템은 사회적 불확실성과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행정 역량을 개선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정부는 국적과 상관없이 국경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제노포비아적 폭력에 신속히 대응하고, 단합을 촉구하는 공적인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지도력만이 국가 전체의 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종교단체와 시민사회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이러한 협력은 지역사회 차원의 대응력을 높이고, 해결책이 실용적이면서도 인도적으로 시행되도록 도울 수 있다.
사회 전반과 우분투의 회복
가정과 학교, 언론, 기업을 아우르는 사회 전체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데 참여해야 한다. 제노포비아는 흔히 잘못된 정보와 고정관념을 먹고 자란다.
이주민들이 사회에 기여한 긍정적 사례를 소개하는 교육과 스토리텔링은 혐오의 서사에 맞서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도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문화적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맺고, 대화를 통해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며, 타인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거친 언어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우분투를 회복한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깊이 연결돼 있음을 의식적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함께 나아갈 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노포비아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각 부문의 협력이 필요하다. 교회와 정부, 시민사회는 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 노력은 정의와 존엄성, 긍휼이라는 공통된 가치 안에서 하나로 모여야 한다.
시민과 이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사회 포럼과 인식 개선 캠페인, 봉사 프로젝트 등을 마련할 수 있다.
법과 정책은 실효성을 갖추면서도 인도적이어야 하며, 제도와 현장의 실무 역시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무엇보다 영적 갱신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된 마음이야말로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단단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환대하는 백성이 되기 위하여
분열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포용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표지판으로 부름받았다.
레위기 19장 33절의 말씀은 단지 고대의 계명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도전하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두려움에 맞서고, 폭력을 거부하며, 긍휼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정의와 연합을 향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길은 아니다. 성경적 진리와 우분투라는 풍성한 유산을 길잡이 삼아 나아갈 때, 이 나라는 낯선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환대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다름이 처벌의 이유가 아니라 존중의 이유가 되고, 모든 사람의 존엄성이 온전히 지켜지는 미래도 가능하다.
이제 교회가 그 길의 맨 앞에 서야 한다. 모든 사람이 주목받고, 존중받으며, 사랑받는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굳건히 증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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