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종교는 주로 개인이나 공동체의 영감을 위한 개인의 선택으로 여겨진다. 마치 ‘쇼핑’하듯 교회를 고르거나 종교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종교인이 소비자가 되고, 영적인 것이 상품이 된다. 하지만 고대인들에게 종교는 이와 정반대였다. 신들이 모든 것을 주관했다. 즉, 신들은 존경과 영예를 받아 마땅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경건한 자들은 (종종 문자 그대로) 지옥 같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고대 아테네인이나 에베소인이 개인적 선호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큰 그림은 이러했다. 종교는 개인, 가족, 도시, 그리고 국가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공동의 의무였다. 고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세계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고대 종교에서 매우 흔했던(많은 이들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던) 신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조롱과 비웃음을 당했다. 신상의 부재는 그들이 ‘신자’라는 표현을 고수한 또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기로 선택했고, 다른 이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가치와 생명을 보았다(고전 1:28).
니제이 굽타 - 기독교, 로마를 뒤흔든 낯선 종교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인식의 토대지만, 이 단어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AD 200년경이 되어서야 기독교인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 때문에 많은 신학자는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리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존재했고 교회가 기독교의 가르침을 이방 세계에 조화시키기 시도하면서 성경의 기원에서 서서히 멀어진 대표 사례가 되었다고 보았다. 신약 시절과 바울의 유대인은 엄격한 일신교도로서 유일하신 하나님보다 많은 신들을 인정하는 사상에는 어떤 것도 절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 또한 유대인의 유일신 사상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수용할 수 있는 신으로 말해왔다. 성령에 대한 부적절한 질문도 없었는데, 이 용어가 신간에 언약 있는 셋째 위격을 묘사하는 것이지만, 그 근거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한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권준과 능력을 표현하는 한 방식을 뿐만이 하는 것이었다.
브랜던 스미스 – 성경과 삼위일체
출애굽기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앞서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과 장사입관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어 출애굽기는 역시 야곱과 11명 아들과 식솔들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 사실과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등장하며, 다 죽고 난 후 자손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시작하고 있다. 즉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변천의 역사적인 서사가 아닌데 요셉이라는 인물이 오며 된 일은 무엇일까?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사역에 있어 요셉이라는 인물이 하나님이 어떤 또는 프리덤 구조의 중심 인물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경 전체를 관통해 보더라도 예수와 가장 맞닿은 인물이 요셉이다. 예수의 구약적 예표와 성형이 요셉이라는 대유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두 인물이 지칭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김정일 – 출애굽기 코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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