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기 위해서는 주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고, 역사와 전통을 많이 연구하여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지 않으면 성경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학문으로만 하면 구원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학문적 지식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성만 만족시키는 학문적 신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믿으며 그분을 찬양하는 전인격적 신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신학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통해 가능합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살릴 수 있는 신학은 성령의 능력이 함께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지 말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장종현 – 왜 신학은 학문이 아닙니까?
구원 역사를 행하실 때 삼위 하나님의 순서를 보자. 먼저, 성부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겠다는 사랑의 목적을 세우신다. 이어서 성자 하나님의 요청이 있고, 이 결과 성령 하나님이 기꺼이 나오신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과는 사랑 안에서 교제하고, 성자 하나님과는 은혜 안에서 교제하며, 성령 하나님과는 보혜사와 우리를 돕는 자의 사역 안에서 교제하는 우리의 특별한 교제를 증언한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시는 성령과 교제하는 방식이다. 성령의 은혜롭고 복되신 뜻, 우리에게 자발적으로 나아오시는 성령의 무한하고 경이로운 역사, 우리가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모든 활동, 우리가 참여하도록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성령의 모든 특권 등을 우리 영혼은 믿음으로 성령으로부터 받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모든 감사와 보답하는 마음을 성령께 쏟아 놓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우리가 성령과 교제할 때 행해야 할 첫 번째 큰일이다.
존 오웬 – 교제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가 절망하는 그 어떤 것이든 구체적으로 그분께 가져오라고 초대하신다.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명명하는 데는 힘이 있다. 이 과정이 실제로 우리 뇌와 감정 상태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 즉 ‘정서 명명’(affect labeling)이라 불리는 과정이 우리의 감정 경험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과정과도 같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이러한 과정은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편도체의 활동은 줄여 준다. 요컨대, 우리의 불안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뇌 활동을 감정 중추(emotional centers)에서 사고와 언어 관련 영역으로 전환할 수 있다.
카일 아이들먼 – 그리스도인의 생각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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