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인 모리스 작가
쉐인 모리스 작가.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쉐인 모리스 작가의 기고글인 ‘복음주의자들은 어느 정도 정치적이어야 하는가?’(Should Evangelicals be more or less political?)를 2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모리스 작가는 콜슨 기독교 세계관 센터의 선임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BreakPoint 해설과 칼럼 등의 글을 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복음주의 교회를 비판하는 평균적인 비평가, 즉 “신앙 해체(deconstruction)”를 경험하고 이제는 자신의 종교적 성장 배경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불만 중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다”라는 것이다. 특히 2016년 이후로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제자를 삼는 것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비판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다.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는 자신의 저서 『왜 종교는 시대에 뒤처졌는가(Why Religion Went Obsolete)』에서 복음주의 교회에 대한 이런 인식(정치적이라는 인식)을 오늘날 교회 출석률 장기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하지만 여기엔 아이러니가 있다. 복음주의 교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정치적이지 않으며, 그 교인들조차도 교회가 정치적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중적인 인식은 거의 ‘신화’에 가깝다.

최근의 여러 대규모 설문조사를 요약한 통계학자 라이언 버지(Ryan Burge)는 “정기적으로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예배당은 매우 드물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에서 문화 전쟁을 벌이는 일부 유명 목회자들은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이다.

2022년 공공종교연구소(PRRI)의 ‘교회 건강 조사(Health of Congregations Survey)’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 중 90%는 자신의 목사가 선거나 투표 사기에 대해 “전혀” 또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92%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고, 낙태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는 비율은 고작 9%였다. 반면, 58%는 “전혀 또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모든 교단을 통틀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정치적” 주제는 빈곤과 불평등이었으며, 66%는 교회가 때때로 또는 자주 이 문제들을 다룬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복음서를 읽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복음주의 교회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들이 정치에 집착하고 있다는 일반적 인식은 사실이 아니다. 교회의 정치적 분열이 5년 전보다 더 심해졌다고 답한 복음주의자는 9%에 불과했으며, 이는 비복음주의자와 가톨릭 신자들보다 낮은 수치였다. “우리 교회가 미국 내 정치 분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항목에 동의한 복음주의자는 14%에 그쳤고, 86%는 동의하지 않았다.

즉, 정치적 진영 논리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데 집중하기를 바란다. 이에 대해 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데이터를 보면, 미국 정치의 분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목회자는 자신의 교인 중 다수를 화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히 보입니다. 정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교인은 거의 없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비신자들의 인식과 교회 내부 현실 간의 괴리는 뚜렷하다. 많은 미국 비신자들은 교회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거의 모른다. 버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종교에 관한 공적 활동을 해보면서 알게 된 것은,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일요일 아침 예배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정치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강단에서 정치 이야기를 더 자주 해야 할까?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정치’인가?

필자가 최근 브레이크포인트(Breakpoint) 방송에서 말했듯, 외교 정책에 대한 목회자의 논평과 낙태 같은 생명 경시 문제에 대한 발언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외교 정책은 전문성과 판단이 필요한 문제인 반면, 낙태는 분명한 도덕적 문제다. ‘정치적’이라는 딱지가 붙는 모든 이슈가 같은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정치’가 무엇인지 그 정의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세상에서 청지기적 권한을 행사하며,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땅 위 사명이라는 점에서,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후보자를 언급하지 않고, 선거를 논하지 않고, 정치적 진영 논리를 세우지 않더라도, 구속사의 전 과정을 충실히 가르치는 목회자와 교사는 다음의 진리를 분명히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삶 위에 주권을 가지신다. 세상과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는 하나님께 중요하다. 그리고 복음과 그 영향력은 사회, 문화, 정부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정치적인 선언이다.

이 모든 것이 복음주의자들이 설문조사에서 보여준 태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말씀에 집중하고, 매주 최신 뉴스를 분석하며 문화 전쟁을 벌이는 식의 설교는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 땅의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교회에서 ‘본질’을 지키는 동시에, 그 예배가 교회 바깥 세상에까지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정치를 숭배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오해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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