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기다리며
도서 「신을 기다리며」

철학자이자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시몬 베유(1909~1943)의 대표작 『신을 기다리며』는 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그녀가 소명이라 믿었던 바를 완수하고자 쉴 새 없이 행동하는 가운데 쓴 편지와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베유의 영적 지도자이자 친구 조제프 마리 페랭 신부에게 부친 이 글들은 허물없는 일상의 언어로 쓰여 있으며, 그녀의 전체 저작 중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깊은 열정이 담겨 있다. 죽음을 한 해 앞두고 썼다는 점에서 이 글들은 그녀의 마지막 유언처럼 읽히기도 한다.

베유는 작가가 아니었고 그녀의 글은 작품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성을 완전히 넘어선 무수한 폭력과 불의를 목격하며 거기서 달아나지 않고 맞섰던 인물이다. 그렇게 그녀가 쓴 글은 시대 상황과 온전히 맞물려 있기에, 그녀의 삶의 연장이며 문학이 아닌 고백이자 증언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신부님께서 제게 그리스도교적 영감을 불러일으키신 것도,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 것도 아니에요. 제가 신부님을 만났을 당시, 그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이미 완수된 일이었으니까요. 그 어떤 인간의 개입도 없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암묵적으로뿐 아니라 의식적으로 제가 이미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면, 신부님은 제게 아무것도 주시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신부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았을 테니까요. 신부님을 향한 제 우정이 오히려 신부님의 메시지를 거절한 이유였을 수도 있어요. 신성한 것들의 영역에 어떤 인간적인 영향력이 행사됨으로써 야기되는 오류나 환상을 두려워했을 테니까요”고 했다.

이어 “신의 자비는 기쁨에서나 불행에서나 똑같이, 어쩌면 그 이상으로 드러나 보입니다. 신의 자비이기에 인간의 자비와는 전혀 닮지 않았거든요. 인간의 자비는 오로지 기쁨의 선사에서 드러나거나, 아니면 육신의 치유나 교육 같은 외적인 결과물을 위해 가해진 고통에서만 드러납니다. 그러나 신의 자비를 증명하는 것은 불행의 외적인 결과물이 아닙니다. 진정한 불행의 외적 결과물은 대부분 부정적이에요.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셈이지요. 실제로 신의 자비가 빛을 발하는 건 바로 그 불행 안에서입니다. 그 맨 밑바닥에서, 위로받을 길 없는 쓰라림 한복판에서입니다. 우리가 사랑 속에서 인내하며, 영혼이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요?’라는 외침을 더는 억누를 수 없는 지점까지 추락한다면,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러서도 계속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마침내 우리는 더 이상 불행도 기쁨도 아닌 무언가에 닿게 됩니다. 기쁨과 고통의 공통 요소로서, 감지되지 않는 무엇이며 순수하고도 핵심적인 본질, 바로 신의 사랑이지요”고 했다.

그러면서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사고를 멈추는 것, 사고가 텅 빈 유연한 상태가 되어 대상 속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습득된 다양한 지식들을 자체 안에 유지하는 것이다. 사고와 인접해 있어도 그보다 낮은 수준에, 사고와 접촉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기존에 형성된 모든 개개의 생각에 대하여 사고는 산 위에 있는 사람 같다. 즉 앞을 바라보고 있어도 동시에 발밑에는 수많은 숲과 평원이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인지하는 것이다. 사고는 무엇보다 텅 빈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 아무것도 찾아서는 안 되며, 자신의 적나라한 진실 속으로 침투하게 될 대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인생의 큰 수수께끼는 고통이 아니라 불행이다. 무구한 사람이 죽임당하고, 고문당하고, 국외로 추방당하고, 비참한 노예 상태로 전락하고, 수용소나 독방에 감금당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또 병이 긴 고통을 야기해 생명을 마비시키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놓이게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연은 기계적 필연성의 맹목적인 작용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이 무구한 이들의 영혼을 낚아채 왕처럼 지배할 수 있도록 신께서 허락하셨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불행의 낙인이 찍힌 자라면 최선의 경우에도 영혼의 절반밖에 지켜 내지 못할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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