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장갑을 낀 집례자, 애처로운 오르간 반주, 죄책감에 고개 숙인 성도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찬식은 지나치게 엄숙함을 넘어 구슬픈 추도식이나 장례식을 닮아 있다. 신간 『성찬, 배부름과 기쁨의 식사』(리커버 에디션)는 이러한 엄숙주의적 성찬 문화를 꼬집으며, 본래 성찬이 부활하신 주님이 베푸시는 가장 풍성하고 기쁜 ‘천국 잔치’임을 성경적, 신학적으로 명쾌하게 입증한다.
예배의 주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지극한 정성을 바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객관적 사역(Opus Dei)이다. 독일어 ‘고테스딘스트(Gottesdienst)’가 의미하듯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저자인 고신대 이성호 교수는 이 관점에서 성찬을 재조명한다. 성찬은 왕이신 주님이 친히 빵과 포도주로 우리를 먹이고 섬기러 오셨음을 확증하는 가장 확실한 가시적 증거이자 ‘보이는 말씀’이다.
칼뱅 성찬론의 복원과 ‘실재적 연합’
책은 화체설이나 상징설의 한계를 넘어 칼뱅의 영적 임재설을 현대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 해설한다. 성찬을 단순히 죽음의 기억에 갇힌 추상적인 의식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의 신비로운 사역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하늘 보좌로 들려 올라가 그리스도와 실재적으로 연합하는 역동적인 은혜의 현장으로 그려낸다. 에덴의 복락과 광야의 만나, 유월절 식사부터 이어지는 ‘먹는 존재’로서 인류가 누리는 가장 극적인 복이 바로 성찬을 통해 성취되는 셈이다.
작은 교회를 살리는 강력한 무기, ‘매주 성찬’
특히 이 책은 대형 교회의 물량주의와 익명성 속에서 작은 교회가 생존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으로 ‘매주 성찬’과 ‘울타리 성찬(Fenced Communion)’을 제안한다. 당회가 성찬 참여를 세심히 살피고 매주 떡과 잔을 나누는 현장의 예전은 온라인 스크린 예배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작은 교회만의 강력한 특권이다. 이를 통해 성도들은 깊은 소속감과 거룩한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게 된다.
신앙의 기본 진리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단단한 기독교> 시리즈의 일환으로 새 옷을 입고 출간된 이 책은, 주관적 정서와 개인적 체험에 매몰된 현대 예배의 한계를 극복할 뚜렷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성찬을 슬픔의 기억에서 해방시켜 장차 임할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기쁨과 배부름의 식사’로 되찾길 갈망하는 모든 목회자와 성도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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