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누구보다 험난한 고난의 길을 걸었던 요셉을 두고 “형통한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요셉이 형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39장 3절은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말씀한다. 여호와를 알지 못했던 애굽 사람 보디발도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요셉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이 드러났던 것이다.
형통한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도 복을 끼친다. 5절은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고 기록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가 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요셉이 좋은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남다른 능력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요셉이 형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자체가 복이다.
말할 수 없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곳에서도 형통의 길은 열린다. 우리도 정직하게 살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요셉의 삶도 그러했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의해 노예로 팔리며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에도 바르게 행동하고 맡은 일에 성실했지만 고통은 끊이지 않았다.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스럽게 일했음에도 주인의 아내를 겁탈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선하고 정직하게 살며 하나님을 신뢰했던 요셉이 왜 감옥에서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즉시 구해 주지 않으셨을까? 모든 것이 불공평해 보였고,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셨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감옥에 머문 시간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나쁜 일처럼 보였던 사건이 훗날 선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가?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올바른 길에 서 있다면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요셉은 형들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했다. 온갖 수모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했지만, 이번에는 성적인 유혹이라는 또 다른 시험을 맞았다.
6절은 보디발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맡겼으며,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고 기록한다. 젊고 준수한 외모를 지녔고 집안의 모든 일을 관리했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와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 유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날마다 계속됐다.
그러나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고백했다. 요셉은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요셉의 거절로 뜻을 이루지 못한 보디발의 아내는 그에게 강한 증오심을 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요셉의 옷을 붙잡고 유혹하자 요셉은 겉옷을 버려둔 채 밖으로 도망했다. 죄의 유혹과 타협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요셉이 남겨둔 겉옷은 본래 그가 유혹을 피해 달아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오히려 그 옷을 이용해 요셉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모함했다. 집안의 종들을 불러 거짓말을 하고, 자신이 소리를 지르자 요셉이 옷을 버려둔 채 달아났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어려운 시험을 이겨낸 요셉에게 상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거짓말한 여인에게 즉시 벌이 내려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죄도 없는 요셉이 감옥에 갇혔다. 여기까지만 보면 매우 실망스럽고 불공평한 결말처럼 보인다.
성경은 요셉이 누명을 벗기 위해 몸부림쳤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억울하고 수치스러운 모함을 당할 때 감정에 휩쓸려 자신을 잃기보다, 먼저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의 억울함과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다.
한 번의 시험을 이겨냈다고 해서 모든 어려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을 이겨낸 뒤에도 더 큰 파도가 밀려올 수 있다. 그렇다고 시험 앞에서 무너지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큰 시련은 더 큰 은혜를 준비하시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감옥은 요셉의 인생이 끝나는 장소가 아니었다.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던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그와 함께하시며 형통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한 감옥은 단순한 결박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의 신앙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 요셉은 신분상 노예였지만 죄의 유혹에 끌려다니는 노예는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나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할 수 없다”는 믿음을 붙들었다.
훗날 요셉은 자신을 팔았던 형들에게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다. 그는 형들에게 팔렸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가족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섭리의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봤다. 이것이 요셉이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나는 열심히 일했고 최선을 다했는데 운이 없는 것 같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눈앞의 결과만 보고 낙심하지 않는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낙심하지도 말자.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희망의 줄을 놓지 말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고난의 자리에서도 형통의 길은 열린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함으로 마침내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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