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셉 마테라 목사의 기고글인 ‘세상의 방식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하나님 나라의 12가지 역설’(12 ways God's Kingdom runs opposite to the world)를 최근 게재했다.
마테라 목사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컨설턴트, 신학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사도 지도자 연합(The U.S. Coalition of Apostolic Leaders), 그리스도 언약 연합(Christ Covenant Coalition) 등 여러 단체를 이끌고 있다.
마테라 목사는 "기독교의 본질은 완전히 다른 나라,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라는 초대에 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우선순위, 그리고 작동 방식은 이 세상의 정신과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면서 "하나님 나라는 뒤집힌 나라(inverted Kingdom)"라고 했다.
그는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자연적인 인간의 이성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이며, 진정한 제자도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라며 기독교 신앙에 나타나는 12가지 역설을 소개했다.
1. 우리는 약함 가운데서 강함을 발견한다
세상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진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이러한 이유로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했다(고린도후서 12:9).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유용하게 쓰임받는 순간은 우리 자신을 의지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때다.
2.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 기쁨을 발견한다
세상은 문제가 없을 때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숙한 기쁨이 고난 가운데서도 존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한다. 이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야고보서 1:2~4).
우리가 고난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맡겨진 고난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시험과 고난은 평안할 때 드러나지 않던 것들을 드러낸다. 우리의 우상을 드러내고, 믿음을 깊게 하며, 인내를 길러주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형성한다.
3. 위로 올라가는 길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세상은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자신을 낮추라고 가르친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한다(베드로전서 5:6).
하나님 나라에서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우리의 자리를 결정하시는 분께 맡긴다.
예수님도 높아지시기 전에 먼저 낮아지셨다.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고 모든 입이 그분을 주라고 고백하기 전에, 예수님은 먼저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안전하게 위로 올라가는 길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4. 부활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를 통과한다
고난주간의 성금요일 없이 부활주일은 없다.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이 영광의 면류관보다 먼저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부활의 능력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를 통과한다.
십자가는 세상의 권력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사건이다. 로마는 십자가를 굴욕과 패배의 도구로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구원과 승리의 도구로 바꾸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자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더 위대한 것이 살아나기 위해 우리 안의 어떤 것은 죽어야 한다. 우리의 자아와 교만, 이기적인 야망,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구는 끊임없이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능력에 이르는 길은 죽음을 통과한다. 부활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를 통과한다.
5. 우리는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원수를 이긴다
세상의 정신과 가장 극명하게 대조되는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이다(마태복음 5:44).
세상은 “원수를 없애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불의를 용납하거나 악에 맞서기를 거부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미워한 나머지 우리 자신이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거부하라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는 악으로 악을 이기지 않는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긴다(로마서 12:21).
6.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잃음으로써 참된 생명을 얻는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6:25).
우리가 자신의 삶과 계획, 명성, 개인적인 목표를 필사적으로 붙들수록 오히려 더 큰 속박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존재의 중심에 놓는다고 해서 결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삶의 중심이 되실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신을 발견한다.
7.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는다
모든 인간의 종교 체계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에 빠지기 쉽다.
“충분히 노력하고, 충분히 성취하고, 충분히 잘하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로 말한다.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에베소서 2:8~9).
기독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에서 시작한다.
선한 행위가 구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선한 행위가 나타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순종한다.
8.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쓴다
히브리서는 성경에서 가장 흥미로운 역설 가운데 하나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히브리서 4:11).
우리는 안식하기 위해 힘쓴다.
하나님 나라의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힘으로 애쓰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내적인 상태다.
통제권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압박감에 이끌려 살아가는 대신 하나님의 임재를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성숙한 신자는 안식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에서부터 일한다.
9.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섬기는지를 기준으로 위대함을 평가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기는지를 기준으로 위대함을 평가하신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10:43).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은 직함이나 영향력, 수행원, 개인적인 특권에 관한 것이 아니다. 책임이 커지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우리는 더욱 낮은 자세로 섬겨야 한다.
10.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함으로써 삶의 필요를 공급받는다
세상은 “돈과 안전, 소유와 편안함을 먼저 추구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6:33).
우리가 물질적인 공급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면 결국 불안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우선순위가 올바르게 세워질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고 약속하셨다.
11. 우리는 나눔으로써 더욱 풍성해진다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6:38).
세상의 경제 원리는 축적해야 풍요로워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관대하게 나누는 것이 더 큰 풍요로 이어진다고 가르친다.
이 원리는 단순히 돈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격려를 나누고, 지혜를 나누고, 자비를 베풀며, 시간과 사랑과 재능을 나눌 때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함이 흘러가는 통로가 된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저수지가 아니다. 우리는 강이다.
12. 다른 사람의 성공을 위해 헌신할 때 우리는 성공한다
세상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하라고 가르치신다.
하나님 나라의 성공은 단순히 내가 무엇을 성취했는지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투자했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중요하다.
결국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의 작동 방식에 따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이 모든 역설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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