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사라 목사
잭 사라 목사. ©worldea.org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잭 사라 목사의 기고글인 ‘성지에 대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기본 지식’(Holy Land 101: What every Christian should understand)를 8월 2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사라 목사는 베들레헴 성경 대학의 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복음주의 연합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교회 지도부와 함께 감독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를 위한 세계 복음주의 연합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성지(Holy Land)’는 성경을 통해 처음 만나는 장소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히 성스러운 유적지나 고대 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정체성, 상처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얽혀 있는 살아 있는 고향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가리기도 한다. 다음의 간단한 용어 정리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이 이 땅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주의 깊게 듣고, 정확하고 책임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출발점이다.

성지(The Holy Land)

‘성지’는 공식적인 정치 명칭이라기보다 종교적·역사적 의미가 강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비롯해 성경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이 깊이 연결된 지역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성지는 성스러운 장소와 오래된 돌, 고고학적 유적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도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예배하고 일하는 삶의 터전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과 관련된 장소들을 사랑하면서도, 정작 그 주변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Palestine)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에는 역사적·지리적·민족적·정치적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인의 고향과 정치적 정체성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다. 고향과 정체성, 가족과 기억, 문화와 소속감을 뜻한다. 팔레스타인인의 정체성과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 곧 유대인의 역사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스라엘(Israel)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야곱과 그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 또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을 가리킨다. 반면 현대 정치에서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된 현대 국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 속 이스라엘과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아무런 구분 없이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곧 현대 이스라엘 정부의 모든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른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정책과 행위 역시 정의와 진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기준 아래 평가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인(Palestinian)

팔레스타인인은 팔레스타인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여기에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난민과 비난민이 모두 포함된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이스라엘, 요르단뿐 아니라 전 세계 디아스포라에 흩어져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도 있다.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은 이스라엘과의 갈등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 안에는 아랍어와 가족 전통, 음식과 음악, 신앙과 환대, 그리고 땅에 대한 깊은 유대가 함께 존재한다.

요르단강 서안지구(The West Bank)

서안지구는 요르단강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베들레헴과 라말라, 헤브론, 여리고, 제닌, 나블루스 등이 포함된다. 동예루살렘의 지위는 국제적으로 별도의 정치적·법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의 지명을 사용해 이 지역을 ‘유대와 사마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명칭은 역사적·성경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현대적 맥락에서 사용할 때는 이곳에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의 존재와 현실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

어떤 지명을 선택하느냐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와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Gaza)

가자는 고대 도시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지중해 연안의 작은 팔레스타인 영토인 ‘가자지구’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가자를 하마스나 전쟁, 사상자 통계만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그곳에는 가족과 교회, 학교와 대학, 직장과 시장, 기억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가자의 작은 기독교 공동체 역시 팔레스타인 교회와 세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부다.

가자지구를 이해하려면 군사적·정치적 현실뿐 아니라 그곳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과 삶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점령(Occupation)

이 맥락에서 ‘점령’은 주로 1967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장악한 팔레스타인 지역, 특히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행정적 통제를 가리킨다.

가자지구의 법적 지위와 ‘점령’이라는 표현의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는 다양한 법적·정치적 논의가 존재하지만, 가자의 국경과 이동, 물자 접근 등에 대한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통제와 봉쇄가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점은 중요한 현실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점령은 추상적인 정치 용어가 아니다. 검문소와 통행 허가, 군사 명령, 정착촌 확장, 토지 사용 제한, 가옥 철거, 이동의 자유 제한 등 일상에서 직접 경험하는 문제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해법을 놓고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실제 주민들이 겪는 삶의 현실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Palestinians with Israeli citizenship)

이스라엘 국가 안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상당수는 1948년 전쟁과 국가 수립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고향에 남아 있던 팔레스타인인의 후손이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아랍 시민’ 또는 ‘이스라엘 아랍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부는 이러한 표현을 받아들이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의 이스라엘 시민권과 팔레스타인 민족 정체성을 함께 드러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이 공동체 안에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드루즈인 등이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 역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아랍인(Arabs)

‘아랍’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여러 지역에 걸쳐 공유되는 넓은 문화적·언어적 정체성을 뜻한다. 팔레스타인인은 아랍인이지만, 모든 아랍인이 팔레스타인인은 아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단순히 ‘아랍인’이라고만 부를 경우, 그들의 고유한 역사와 팔레스타인 땅과의 관계가 희미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랍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외부 집단으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

성지의 여러 아랍계 기독교 공동체 가운데는 수 세기, 경우에 따라 그보다 훨씬 오래 이 땅에 뿌리를 두고 살아온 공동체들이 존재한다.

성지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Land)

‘성지의 교회’는 하나의 교단이나 단일 기관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땅에서 살아가며 예배하고 섬기는 다양한 기독교 공동체를 포괄하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정교회와 가톨릭, 오리엔탈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복음주의 교회 등 여러 전통이 포함된다. 구성원 가운데 상당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이며, 이 밖에도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 이주민, 국외 거주자, 국제 공동체 출신 신자들이 함께 살아간다.

이들은 단지 성지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사회 안에서 예배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현지 그리스도인들이다.

세계 교회가 현지 교회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성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현지 교회는 고고학이나 관광, 예언적 해석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예배와 섬김, 갈등과 고난, 신실한 삶을 통해 이 땅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무드(Sumud)

‘수무드’는 확고함과 인내, 굳건히 버팀 또는 뿌리내림을 의미하는 아랍어다. 팔레스타인의 맥락에서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살아온 땅에 머물며 공동체와 정체성, 삶과 희망을 지켜나가려는 태도를 뜻한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수무드는 단순한 정치적 저항의 개념을 넘어 영적인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리스도께 신실하게 머물고, 이웃을 섬기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회를 지키며, 올리브 나무를 심고, 일자리를 만들고, 증오와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삶을 뜻한다.

수무드는 불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체념과도 다르다. 정의로운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삶과 예배, 섬김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깝다.

더욱 신실한 어휘를 향하여

이러한 용어 정의만으로 성지를 둘러싼 모든 신학적·역사적·정치적 논쟁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더 정확히 이해하고, 더 책임 있는 대화를 시작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증오 없이 진실해야 하고, 상대의 인간성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진실을 말할 만큼 용기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정의와 긍휼이 함께 자리해야 한다.

성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성경 속 장소와 유적을 사랑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땅을 지금도 고향이라 부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존엄과 고통, 희망을 함께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