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 등을 받는 장윤기(23)가 14일 오전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 송치를 위해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일면식도 없는 여고생에게 성범죄를 시도하다 저항하자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장윤기(23)가 법정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사건 발생 이후 두 달 넘게 성범죄 목적을 부인해오던 입장을 처음으로 번복했다.

광주지법 형사13부는 13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상 강간 등 살인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윤기의 두 번째 공판을 열었다.

장윤기 측 변호인은 검찰이 제출한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 추가 증거를 확인한 뒤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장윤기도 재판부가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하는지 묻자 “네”라고 답했다.

앞선 첫 공판에서 입장 표명을 유보했던 강간 등 살인 혐의까지 인정한 것으로, 장윤기가 성범죄 목적의 범행을 부인해온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범행 전후 영상과 전자정보 증거 제출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오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월계동의 한 고등학교 인근에서 귀가하던 이채원(17)양에게 성범죄 목적으로 접근한 뒤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남자 고등학생(17)도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달 3일 직장 동료인 외국인 여성 A씨를 감금해 성폭행하고 스토킹한 혐의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6월부터 7월 사이 중학생의 신체 일부를 여러 차례 몰래 촬영한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이날 A씨를 상대로 한 범행부터 이양 살해 사건까지 이틀간의 상황이 담긴 CCTV 영상과 화물차 블랙박스 영상, 장윤기의 휴대전화에서 확보한 전자정보, 부검 감정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증거조사 과정에서는 장윤기가 이양을 뒤따르거나 앞서 이동하는 모습이 담긴 CCTV와 범행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재생됐다.

검찰은 장윤기 원룸에서 발견된 인체 모형 성인용품의 유전자정보 감식 보고서와 범행 당일 차량 수색·감식 영상도 추가로 제출할 계획이다. 차량 조수석에서 발견된 케이블 타이는 성범죄를 준비하기 위한 도구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살인 송치 뒤 검찰이 ‘강간 등 살인’으로 변경

경찰은 장윤기가 검거 직후 “죽기 전에 누구든 데려가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자 형법상 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장윤기 자택에서 발견된 훼손된 인체 모형 성인용품과 A씨 상대 범행 수법, 범행 직전 차량 뒷문을 미리 열어둔 정황 등을 근거로 혐의를 강간 등 살인으로 변경해 기소했다.

검찰은 장윤기가 이양에게 뒤에서 접근해 목을 졸라 제압하려 한 행위부터 성범죄 실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저항으로 성범죄가 미수에 그친 뒤 흉기로 살해한 만큼 강간 등 살인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또 이양의 목을 조른 방식이 앞서 A씨를 제압한 수법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형법상 살인죄는 유기징역 선고가 가능하지만 강간 등 살인죄의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사형이다.

검찰은 오는 27일 열리는 다음 공판에서 살인미수 피해자인 남학생과 이양 유족, 장윤기의 평소 언행을 증언할 지인 등을 불러 신문할 예정이다.

유족 측 “진심 어린 반성으로 보기 어려워”

재판이 끝난 뒤 이양 측 법률대리인은 장윤기가 최근 제출한 반성문에 성범죄 목적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률대리인은 장윤기가 반성문에 “무책임한 생각으로 피해자를 해쳤고 당연했던 일상의 한 조각을 앗아갔다”는 취지로 적었을 뿐 성적 범행 목적은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를 진심 어린 반성으로 평가해 양형에 반영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에 앞서 시민단체는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수사의 전면 재검토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양의 어머니는 “증거와 유품 처리, 부실수사와 은폐 의혹을 성역 없이 규명하고 사건을 전면 재수사해 달라”며 “가해자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고 사건 은폐와 왜곡에 관여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 초동수사 부실·은폐 의혹 수사 확대

장윤기가 강간의 고의까지 인정하면서 경찰의 초동수사 부실 논란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검찰과 경찰은 당시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이 인체 모형 성인용품과 케이블 타이 등 성범죄 목적을 입증할 증거를 누락하거나 인멸하고, 장윤기의 아버지인 현직 경찰관에게 수사 동향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수사 지휘 과정에서 강간 등 살인 혐의 대신 살인 혐의만 적용한 배경에 윗선의 부당한 지시나 관여가 있었는지도 조사 중이다.

현재 당시 수사팀장인 경감 1명은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됐고, 당시 광산서장과 형사과장 등 수사 담당자 여러 명이 추가 입건됐다.

검찰은 지난 10일 광산경찰서를 다시 압수수색했고, 경찰도 다음 날 광주경찰청장 등 수사 지휘부를 압수수색하며 윗선 개입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리는 이양 유족에게 사과하고 ‘경찰 수사 신뢰 제고 쇄신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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