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가 반도체 ETF와 주가 흐름을 확인하는 모습. 이미지=AI 생성 / 기독일보
투자자가 반도체 ETF와 주가 흐름을 확인하는 모습. 이미지=AI 생성 / 기독일보 ©AI 생성 / 기독일보

◈ OECD, 한국 잠재성장률 1.5% 미만 전망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내년에 1.5%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5% 미만으로 제시하면서,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 등 부작용을 크게 일으키지 않으면서 한 경제가 달성할 수 있는 중장기 성장 능력을 뜻한다. 이번 전망은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단기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구조적 성장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경고로 해석됐다.

최근 한국 경제는 반도체 수출 증가에 힘입어 성장률 지표가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반도체 호황이 경제 전반의 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잠재성장률 반등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반도체 경기의 상승 국면이 한국 경제 전체의 체력 개선으로 착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반도체 착시’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 1990년대 반도체 특수와 외환위기 전 경고

한국 경제가 첫 번째 반도체 특수를 맞은 것은 1992년부터 1995년 사이였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메모리반도체인 D램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수출도 급증했고, 1992년에는 반도체가 처음으로 한국의 수출 품목 1위에 올랐다.

반도체 호황은 수출과 성장률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1994년과 1995년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1995년에는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경제성장률도 기존 6% 안팎에서 8.9%까지 상승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급성장했다. 당시 대표 기업이던 삼성전자, LG반도체, 현대전자는 1990년대 들어 매출을 연평균 두 자릿수로 늘렸다. 1994년 세계 반도체 기업 순위에서는 삼성전자가 7위에 올랐고, LG반도체와 현대전자는 각각 20위와 2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매년 수천 명 규모의 채용을 진행했고, 주가도 급등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1992년 1만 원대에서 1995년 10월 12만 원대로 뛰었다. 반도체 3사는 조 단위 시설 투자에 나서며 호황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확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반도체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6년부터 반도체 경기가 꺾이기 시작했고, 1996년과 1997년 메모리반도체 D램 가격은 각각 51%, 65% 급락했다. 1996년 888.85로 출발한 주가지수는 그해 마지막 거래일 651.22까지 떨어지며 27%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도 1995년 말 700원대에서 1996년 말 800원대로 상승했다.

◈ 반복된 반도체 사이클, 호황 뒤에는 침체가 왔다

전문가들은 당시 반도체 경기 둔화가 1997년 외환위기의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수요, 가격, 재고, 설비 투자 흐름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불황에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 경제는 큰 충격을 받았다.

1998년 강만수 당시 재정경제원 2차관은 IMF 구제금융 이후 열린 비상경제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외환위기의 구조적 원인이 이미 1993년 국제수지 반짝 흑자 시기부터 시작됐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당시 흑자가 반도체 특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었음에도 그 허상에 가려 구조적 문제를 놓쳤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반도체 착시는 한 차례에 그치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2016년부터 2018년까지도 D램 수요가 크게 늘면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반도체 수출은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이후 D램 수요가 줄면서 반도체 경기는 다시 위축됐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충격이 겹치면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도 흔들렸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경제 전반의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여러 차례 확인된 셈이다.

◈ 최근 반도체 호황, 한국 경제 성장률 끌어올려

최근 한국 경제는 다시 강한 반도체 호황을 맞고 있다.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10.5% 증가했다. 이는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1976년 1분기 13.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도 17.1% 늘었다.

명목 GDP가 큰 폭으로 증가한 배경에는 반도체 수요 확대와 수출 가격 상승이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출 가격이 올라갔고, 이 흐름이 국내총생산 지표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반도체 의존도는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5월 수출은 877억5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전년 대비 53.2% 증가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액 비중은 42.3%에 달했다. 1990년대 반도체 호황 당시 의존도가 10%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특정 산업에 대한 쏠림이 크게 심화된 것이다.

반도체와 컴퓨터를 제외한 수출 증가율은 9.5%에 그쳤다. 주식시장에서도 반도체 비중은 커졌다.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3000대였던 코스피지수는 이달 초 8800까지 올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은 전체 시장의 절반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 전문가 “호황을 구조개혁과 투자로 연결해야”

전문가들은 현재의 반도체 호황을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 수출 증가에 머무를 경우, 반도체 경기 하강 국면에서 한국 경제가 다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 경제의 문제는 산업은 반도체에, 지역은 수도권에 쏠려 있다는 것”이라며 “내년부터 D램 공급은 늘어나고 수요가 줄어들 수 있는 조짐이 있고, 현실화되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허 교수는 현재의 호황으로 생긴 재정 여력을 단기 소비 진작에 쓰기보다,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호황으로 확대된 지출 여력을 복지나 소비쿠폰 발급 등에 써선 안 된다”며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서는 기업이 스스로 자본, 인재, 기술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수입 공급망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등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과 투자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 경제는 지금 반도체 호황이라는 기회를 맞고 있지만, 동시에 반도체 착시라는 위험도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경기 상승 국면을 구조개혁과 미래 투자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잠재성장률 하락 흐름을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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