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진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기독일보 DB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을 두고 중국이 북러 밀착을 견제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최근 정상회담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협력을 강조했음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진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중국이 민감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7년 만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방북은 시 주석이 지난달 19∼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이징에서 만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뤄졌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당시 중러 협력이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경제적으로 밀착하며 대중 의존도를 낮추는 흐름을 그대로 두기 어렵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일정한 틈을 만들기 위해 김 위원장에게 북미 접촉 재개를 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북한은 중국의 이런 속내를 활용해 경제 협력 확대와 함께 핵보유국 지위에 대한 사실상 묵인을 얻어내려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러 군사협력 확대에 민감한 중국

뉴욕타임스는 시 주석의 방북이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 확대에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2년 전 상호방위 성격의 군사조약을 체결한 이후 안보·군사 협력을 빠르게 확대해 왔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에 병력과 포탄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대가로 석유와 식량, 무기 기술 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북한은 안보 측면에서 러시아라는 후원자를 얻었고, 경제 회복에도 도움을 받으면서 중국 의존도를 일부 낮추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CNN은 북한이 시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군사적·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으려는 균형 외교를 이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서방 외교 소식통들도 중국이 북러 협력 심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BBC는 약 2300명의 북한 군인이 러시아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킷 판다 연구원은 “중국은 북러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는 시기에 북한에 대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이성현 교수도 중국이 북러 협력 강화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러 접근은 미국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미국 전략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국에 일정한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북러 군사협력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미국과 한국, 일본의 군사적 대응이 강화될 수 있고, 이는 중국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의 북핵 침묵, 전략적 선택 되나

시 주석의 방북 과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다.

뉴욕타임스는 북중 정상회담 이후 나온 발표문에 북한 핵이나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지역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수호해야 한다”는 내용만 포함된 점에 주목했다.

과거 북중 외교 회담에서는 북한 핵 프로그램 종식을 위한 협력이나 한반도 비핵화 관련 언급이 관례적으로 포함돼 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전승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이후 관련 언급이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도 북한에 대한 외교적 고립과 경제 제재, 무력과 압력 사용에 반대한다는 표현만 담겼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빠졌다.

이 같은 중국의 침묵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핵보유국으로 대우받으려는 입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 주석의 방북을 앞두고 북한은 핵·미사일 역량을 과시하는 행보를 이어갔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생산 시설로 알려진 ‘캐스케이드’ 사이를 걷는 모습을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했다. 6일에는 군수공업 기업소를 방문해 탄도·순항미사일 생산 능력을 5년 안에 2.5배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방북 하루 전인 7일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불퇴의 한계선이며 누가 인정하든 말든 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북핵 압박하면 북한은 러시아로 더 기울 것”

중국이 북한 핵 문제에 공개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북러 밀착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 석좌는 중국이 평양의 핵 프로그램에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경우 북한이 푸틴 대통령 쪽으로 더 깊이 기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으로서는 북핵을 직접 압박하기보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 핵 프로그램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커질수록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더 깊이 관여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러 밀착이라는 변수가 커지면서 중국의 계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을 지나치게 압박할 경우 북한이 러시아에 더 의존하게 되고, 이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사실상 묵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북한을 중국 영향권 안에 붙잡아두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중 정상회담, 한반도 정세 변수로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북은 북중관계 복원과 함께 북러 밀착 견제, 미국 중심 질서 대응, 한반도 정세 관리라는 복합적 의미를 갖고 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공간을 넓히며 군사·경제적 실익을 확보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러시아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자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내놓을 메시지에 북한 핵 문제, 북러 군사협력, 북중 경제협력, 대미 공동 대응 기조가 어느 수준으로 반영될지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의 흐름도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기존의 비핵화 원칙을 유지할지, 아니면 침묵과 묵인에 가까운 태도를 이어갈지가 향후 북중관계와 동북아 안보 구도를 가를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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