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댄 델젤 목사의 기고글인 ‘“당신은 그리스도를 따르기엔 너무 똑똑한가?(Are you too smart to follow Christ?)를 1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델젤 목사는 네브래스카주 파필리온에 있는 리디머 루터 교회(Redeemer Lutheran Church in Papillion)의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사람도 성경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성경이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쇼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거부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똑똑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확신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회개와 믿음으로 무릎 꿇는 것을 거부했다.
다소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회심하기 전까지, 기독교를 적대하던 매우 지적인 열심당원이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에는 자신이 너무 ‘똑똑하다’고 여겼던 그 시절, 그의 눈은 진리에 대해 가려져 있었고 그의 “열심은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롬 10:2). 그런 잃어버린 영혼이 어떻게 신약성경의 13권 혹은 14권의 서신을 기록하게 되었을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지능의 척도는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도 바울은 역사상 가장 지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테러리스트였던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한 것보다 더 큰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울은 태초에 인간의 지능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만났다(골 1:15–17 참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IQ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자기들보다 ‘아래’에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욕설로 사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거나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말씀하셨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요 15:25).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지식인들은 자신이 떠올리는 모든 생각을 다 믿는 일을 멈춰야 한다. 수백만 명의 고지능자들이 무덤으로 들어간 뒤에야 예수에 대한 진실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성령께서는 성경을 통해 분명히 밝히신다. 인간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뒤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죄 없으신 구주께서 2천 년 전 로마의 십자가에서 처형을 견디신 이유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똑똑한가’? 십자가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방식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당신과 필자의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다.
언젠가 당신과 필자는 그리스도의 법정 앞에 서게 될 것이다(고후 5:10 참조). 이는 모든 왕과 모든 거지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종교는 군중의 우상이며,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고 말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1740–1786)도 예외가 아니다.
버나드 쇼와 마찬가지로, 프리드리히 역시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만왕의 왕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결국 참된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쪽은 프리드리히였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세상의 지혜”(고전 1:21)를 찬양하지만,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고전 1:25).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세상은 인간의 지성을 높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 1:21).
이제 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주님을 신뢰하기에 너무 ‘똑똑한’ 아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로부터 예수를 무시하도록 가르침받은 경우뿐이다. 거짓된 세뇌가 없는 한, 아이들은 예수의 사랑을 알게 되면 기쁨으로 주님께 노래한다.
안타깝게도, 어떤 부모들은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막 1:15) 일을 원치 않는다. 팔레스타인 일부 부모들이 자녀에게 유대인을 미워하도록 가르치듯, 상당수의 유대인 부모들과 무신론적 이방인들은 자녀들에게 예수를 전염병처럼 피하라고 가르친다.
억만장자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은 형편없는 스승이다. 그것은 똑똑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결코 질 수 없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성공은 또한 성공의 궁극적 의미와 ‘똑똑함’이 무엇인지를 자신이 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필자 역시 게이츠의 말에 동의한다. 세상적 성공을 이룬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정의하시는가? 예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당신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든, 그분을 거부하든, 이 메시아의 질문은 영원 속에서 당신의 마음을 계속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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