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 장로
이훈구 장로

아브라함은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개인 신앙의 깊이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자녀와 가정을 향해 신앙을 계승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세기 18:19)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필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내 자녀에게 무엇을 명하며 살아왔는가?” 성취를 요구했는지, 경쟁에서 이기라고 말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먼저 보여 주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성공이나 업적이 아니라, 그가 다음 세대를 어떻게 세울 사람인가를 보셨다. 아브라함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택하시고, 아들을 주어 만국 백성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다. 창세기 2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네게 크게 복을 주어 네 씨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아져서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라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그 약속은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구십구 세가 되도록 자녀가 없었고, 기다림 가운데 실수도 했다.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그는 인간적인 조급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앞서가고 말았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필자는 부모로서 조급해졌던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의 때보다 내 기대가 앞섰던 순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결국 이삭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를 세운 아버지가 되었다.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부모의 실수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크다는 사실, 그리고 늦은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다시 붙들게 한다.

1. 아브라함의 신앙은 ‘혼자만의 믿음’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미 75세였다.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나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길에는 항상 가족이 함께 있었다. 그의 신앙은 개인적 결단에서 멈추지 않고, 가정 전체의 방향이 되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정을 떠올리게 된다. 신앙은 개인의 열심으로는 유지할 수 있지만, 계승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의 방향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은 말로 설교한 아버지가 아니라, 삶으로 방향을 보여 준 아버지였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믿어라”라고 말하기 전에, 믿음으로 사는 삶을 먼저 보여 주었다. 단을 쌓고 예배하는 모습,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는 태도, 실패 속에서도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세가 자연스럽게 자녀의 눈과 마음에 새겨졌다.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그의 삶은 이삭에게 가장 분명한 신앙 교과서였다.

필자 역시 세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늘 마음에 새겨 온 기준이 있다. 그것은 세상적인 성공보다 말씀 가운데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었다. 필자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 주는 것이, 아버지로서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라고 여겨 왔다.

그래서 주일이면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일을 삶의 최우선에 두었다. 때로는 바쁘고 피곤한 날도 있었지만, 예배를 선택하는 그 작은 반복이 결국 가정의 방향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지금 세 자녀 모두가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을 바라보며,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 모리아산에서 드러난 자녀교육의 정점

창세기 22장의 모리아산 사건은 자녀교육을 논할 때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신다. 이 사건을 단순히 ‘믿음의 시험’으로만 이해하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담긴 깊은 신앙의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이삭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장작을 지고 함께 산을 오를 만큼 성장한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불과 나무는 있으나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 질문 앞에서 아브라함은 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필자는 부모로서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위기의 순간마다 나는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었는가, 아니면 내 계산과 불안을 먼저 드러내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평생 살아온 신앙의 결론이었다. 이삭은 그 순간,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배웠다. 아버지가 늘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삼고, 내려놓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에, 이삭은 그 믿음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을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며 필자는 이런 기도를 하게 된다. “나도 자녀와 손주들에게 이런 아버지, 이런 할아버지로 남고 싶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고백이 마음 깊이에서 올라온다.

3. ‘결과’보다 ‘계승’을 귀하게 여긴 아버지

아브라함의 자녀교육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이삭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삭 역시 연약했고 실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이삭이 아버지의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자녀를 자신의 꿈의 연장선으로 키우지 않았다. 그는 자녀를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이 시각의 차이가 자녀교육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묻는다. “어떻게 하면 자녀가 잘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자녀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 앞에서 필자는 부모로서의 우선순위를 다시 점검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자녀교육은 오늘 우리의 가정에도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자녀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자녀를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으로 바라볼 때, 집착은 통제가 되고 신뢰는 믿음의 교육이 된다.

결국 자녀의 신앙관을 만드는 것은 결정의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결과보다 신앙의 유산을 남기고 싶다. 세상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남길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임을 믿기 때문이다.

[ 핵심 포인트 ]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아버지, 아브라함

* 자녀교육은 부모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서 시작된다.
*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진 다음 세대다.
* 위기의 순간에 부모가 하나님을 선택하는 모습이 자녀의 신앙을 형성한다.
* 신앙 교육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삶의 방향이다.
*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가장 값진 유산이다.

이훈구 장로 G2G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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