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은혜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What does it mean to fall from grace?)를 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성경에는 분명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말씀들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중 상당수가 예수님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씀이다.

또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이 말씀은 수많은 신앙 고백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혹시 자신이 그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은 아닐지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말씀들은 의도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시편과 잠언이 말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시 111:10; 잠 9:10)는 진리의 한 면을 보여준다. 또 다른 면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기쁘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어떤 구절들은 잘못 이해되어 불필요한 불안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갈라디아서 5장 4절, 바울이 말한 “은혜에서 떨어진 자들”이라는 표현이다. 이 구절을 읽고 혹시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구원을 잃을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한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다.

만약 당신이 그런 염려를 해왔다면, 좋은 소식이 있다. 그 구절은 그런 뜻이 아니다.

혼합 신앙을 경계하라

갈라디아서 5장 4절과 같은 구절을 이해할 때 우리는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과정을 사용한다. 이는 성경 해석의 학문으로, 관찰(본문에 무엇이 있는가), 해석(그 의미는 무엇인가), 적용(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은 성경이 먼저 우리를 깨닫게 하고, 설득하며, 결국 변화시키는 삼중의 흐름을 가능하게 한다.

관찰 단계에서는 사용된 용어, 문장의 구조, 문학 장르, 역사적 배경 등을 살핀다. 바울이 “은혜에서 떨어졌다”고 말할 때 이 배경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갈라디아서가 기록된 배경을 보면, 갈라디아 교회는 유대주의 교사들에 의해 침투당했다. 이들은 구약 율법과 관습을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의 구원과 섞으려 했다. 바울은 이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갈 1:7), “괴롭게 한다”(갈 5:12)고 지적하며, 할례와 같은 율법적 관습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고 비판한다.

이 역사적 배경은 “은혜에서 떨어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성경 한 구절에는 단 하나의 올바른 해석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적용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해석은 하나다. 칼뱅의 말처럼, 성경은 풍성한 지혜의 샘이지만 사람이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텍스트는 아니다.

문맥이 말해주는 의미

갈라디아서 5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만일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할례를 받는 각 사람은 온 율법을 행할 의무를 지는 자라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바울은 먼저 교회가 지킬 수 없었던 율법에서 자유케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다시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하거나, 율법과 은혜를 혼합하려 한다면, 결국 “온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고 경고한다. 존 맥아더는 이를 “혼합 종교(hybrid religion)”라고 부른다.

따라서 “은혜에서 떨어졌다”는 표현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이 오직 은혜(sola gratia)와 믿음(sola fide)으로만 주어진다는 진리에서 벗어나, 행위나 의식, 율법 준수에 의지하려는 잘못된 방향으로 기울어졌다는 의미다.

거짓 가르침인가? 그렇다. 구원의 상실인가? 아니다.

오늘날의 적용

놀랍게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35%만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온다”는 전통적 성경적 관점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중 일부는 거듭나지 않은 명목상 신자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자 중에도 행위가 영원한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은혜에서 떨어짐”은 바로 이 경고다. 행위와 은혜를 섞으려는 유혹에서 돌아서라는 하나님의 경고다.

혼합 종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쉼과 평안을 빼앗고, 내가 과연 하나님 기준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불안과 확신의 상실을 가져온다. 그리고 다시 두려움의 종노릇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워렌 위어스비는 이렇게 설명한다. 은혜 안에서 사는 삶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는 삶이지만, 율법 아래서는 자기 노력에 의존해야 한다.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한다. 그러나 육신의 노력은 성령을 통한 믿음이 이루는 것을 결코 이룰 수 없다.

결론

“은혜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구원을 잃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근거를 바꾸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영원한 생명의 유일한 근거로 믿는 자리에서, 거기에 나의 행위를 더하려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버려야 할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바울이 말하듯, “이러한 생각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갈 5:8).

구원은 그리스도 플러스 무언가가 아니다.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를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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