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유지 요건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과거 야당 시절 필리버스터를 적극 활용하며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민주당이 여당이 된 이후 해당 제도를 제한하는 방향의 개정안을 추진하자, 정치권에서는 아이러니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른바 ‘필리버스터법’(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안에는 필리버스터 유지 조건을 강화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으며, 재적 의원 5분의 1 이상이 본회의에 재석해야 필리버스터가 계속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상정안이 통과될 경우, 본회의장에 60명 이상 의원이 없으면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 있다.

한국 국회에서 필리버스터의 역사는 1948년 제헌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 사실상 무제한 토론이 가능했고, 국회법 제46조는 국회의 결의가 없는 한 의원의 발언 시간을 제한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제도 속에서 1964년 초선 의원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 체포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발언하며 국내 최초의 필리버스터 사례를 남겼다.

1973년 유신 체제 아래에서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필리버스터는 사실상 사라졌다. 당시 개정된 규정은 의원의 발언 시간을 45분으로 제한하고, 의장이 15분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무제한 토론은 불가능해졌다.

필리버스터는 이후 39년 만인 2012년 국회선진화법(현 국회법)과 함께 다시 도입됐다. 이는 ‘동물 국회’ 논란을 끝내고 소수 정당의 의견 개진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였다. 도입 이후 한동안 활용되지 않았던 필리버스터는 2016년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야당이었던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들이 연대하면서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됐다.

19대 국회 말인 2016년 당시 새누리당 소속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자, 야3당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12시간에 걸쳐 발언을 이어갔다. 누적 발언 시간은 192시간 27분으로 약 8일 동안 필리버스터가 지속됐으며, 온라인 생중계와 장시간 발언은 ‘말의 정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소수 정당의 의견이 국민에게 직접 전달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필리버스터는 이후 각 국회에서 활용 빈도가 늘었다. 19대 국회에서 1회 발동된 이후 20대와 21대 국회에서는 각각 2회씩 시행됐으며, 22대 국회에서는 이날 기준 총 7회 발동돼 16개 안건에 적용됐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제도가 도입 취지와 달리 야당의 ‘시간 끌기’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3일 국회 운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했으며,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오는 9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소수 야당의 마지막 권리를 박탈하는 법안”이라며 개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 가능성도 거론했다. 당 내부에서는 ‘필리버스터 법안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전략도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민주당 관계자는 “개정안은 필리버스터 금지법이 아니다”라며 “말할 권리는 그대로 두되, 재적 의원 5분의 1 이상은 책임 있게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개정안 처리를 막는 전략을 시도하더라도, 의석수 차이로 인해 법안 처리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필리버스터 활용 방식과 정치적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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