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전해온 외국 라디오 방송들이 최근 대거 중단되며,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정보의 창이 급속히 닫히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38 North)'는 지난 21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지난 5월 이후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 라디오 프로그램의 송출 시간이 약 80%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970년대 초부터 수십 년간 지속돼온 대북 라디오 방송은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과 세계의 뉴스, 북한 내부 소식 등 검열되지 않은 다양한 정보를 전달해 왔다. 민주주의 원리, 경제 교육, 사회적 이슈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 이 방송들은 북한 정권이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을 전하며 북한 사회에 일정한 영향을 미쳐왔다.

단파 라디오 수신기만 있으면 북한 전역 어디에서든 청취가 가능했던 이 방송들은, 북한 당국의 전파 방해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존속해왔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의 글로벌 미디어국이 해체되면서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송출이 중단됐고, 이달 초에는 한국 국가정보원이 운영해온 '희망의 메아리', '국민의 소리', 'K-뉴스', '자유북한방송' 등 네 개의 방송도 송출을 멈췄다.

과거 남북 관계의 변화에도 중단 없이 지속돼온 '희망의 메아리'와 '국민의 소리'마저 중단되면서, 북한 주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송 수는 단 4개, 주파수는 6개로 줄어들었다. 이는 전파 방해가 훨씬 쉬워졌음을 의미하며, 외부 정보 차단이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출 시간도 대폭 줄었다. 하루 기준 전체 라디오 방송 시간은 종전의 415시간에서 89시간으로 감소했다. 이 가운데 KBS 산하 '한민족방송'이 54시간, 국방부 소속 '자유의 소리'가 24시간을 차지하며, 두 방송이 전체 시간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마저 방송을 중단할 경우, 영국 BBC가 평일 30분 송출하는 방송과 소규모 민간 방송들만이 간헐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이 된다.

남아 있는 자유북한방송, 북한개혁방송, 국민통일방송 등 3개 민간 방송은 대부분 미국의 민주주의 진흥기금(NED)과 국무부 산하 민주주의·인권·노동국의 지원을 받아 운영돼왔다. 그러나 이들 기관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구조조정으로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졌고, 이에 따라 방송 중단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오랜 기간 외국 라디오 방송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차단해왔다. 2006년에는 라디오와 TV 채널을 북한 매체에만 고정하는 법을 시행하고, 자유롭게 채널을 바꿀 수 있는 수신기를 소지한 주민을 엄격히 처벌해왔다. 그럼에도 많은 주민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외부 방송을 청취하고, 그 내용을 주변에 전파해왔다.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외국 방송을 청취하는 북한 주민들은 주로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 북한 내부 상황 파악, 실생활에 유익한 정보 습득 등을 이유로 꼽았다. 라디오는 국경을 넘겨 콘텐츠를 들여올 필요가 없고, 수신 시 추적 흔적이 남지 않아 당국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 수단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같은 통로가 점점 닫혀가면서 북한 주민들의 외부 세계 접근은 더욱 제한될 전망이다. 만약 한반도에 정치적 혹은 군사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적인 정보 전달 수단을 잃게 된 것을 뼈아프게 후회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정보는 곧 자유다. 그리고 지금, 그 자유의 숨통을 틔워주던 라디오의 목소리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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