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은 메델린 주교회의에서 태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8년 8월에 콜럼비아 메델린에서 열린 제 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총회에서 구티에레츠는 ‘해방’ (Liberation) 이라는 이슈를 가지고 주제연설을 하였고, 그 후 1971년에 구티에레츠는 (Gutierez)는 『해방신학』(A Theology of Liberation) 이란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였는데, 이것이 해방신학 최초의 대표작이 되었다. 해방신학은 서구 교회와 서구 중심의 선교를 통해서는 이 세계에 현존하는 구조적 불의 (systematic injustice)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는 ‘발전’ 이 아니라 ‘해방’을 지향하였다.
해방신학이 ‘발전’이라는 개념 대신 ‘해방’을 강조하게 된 배경에는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개발이 있었지만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그 개발의 혜택을 받았을 뿐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혹은 더 가난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더욱 더 심화되면서, 결국 빈곤의 문제는 지식이나 문화나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전 세계적인 구조적 관계들 (global structural relationships)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해방신학이 등장하면서 이제 빈곤은 개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불의 (injustice)의 근원적인 원인을 제거할 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개발은 과거와의 진화적 연속성 (evolutionary continuity)을 의미하는 반면, 해방은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해방신학은 종속관계에서 배불리 먹고 사는 것보다는 인간다움이 보장되는 ’해방‘을 추구하였다.
해방신학은 특별히 가난한 자와 억압 받는 자 등의 해방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이러한 자들을 해방시키는 그리스도를 많이 강조하였다. 즉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편에 서며, 그들의 해방을 위하여 자신을 주시는 분으로서의 예수를 부각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해방신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시는 그리스도 이해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을 해방투쟁의 참여로 이끄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단지 구원하는 존재가 아니다. 해방신학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친히 해방운동의 선구자가 되고 모델이 되는 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 분의 모범을 따라 해방운동에 동참할 것이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예수를 이상적인 윤리 모델로 제시하는 것이 자유주의 신학의 경향 중의 하나인데, 해방신학도 예수를 윤리적인 모델 또는 해방운동의 선구자로 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해방신학의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절대적 구원자로서 보다는 우리가 믿고 따라가야 할 윤리적 모델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되며, 이러한 이해가 에큐메니칼 그리스도 이해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계속)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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