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락 목사
배경락 목사 ©기독일보DB

아버지는 예의 그 자체였다. 등산 할 때도 반드시 양복 정장을 입으셨고, 목욕탕에 가실 때도 정장 차림이었다. 갑자기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반드시 정장을 차려입고서야 손님을 맞이하셨다. 인사할 때도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아랫 사람을 대할 때도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때에도, 결코 잊지 않은 것 두 가지는 자신이 목사라는 사실과 예의였다. 아버지는 늘 “목사는 국제 신사야. 그러므로 예의를 갖추어야 해”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예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예의를 다하였다. 설교 한 편을 할 때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였다. 원고를 쓴 후에 수정을 거듭하였고, 나중엔 여러 차례 읽었다. 정식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한 아버지는 언제나 성경 공부에 열심이었다. 예배를 드릴 때면 ‘정좌 (正坐), 정시 (正視), 정청 (正聽)’을 강조하였다. "똑바로 앉아서, 똑바로 보고, 똑바로 들어라." 하나님을 뵈올 때는 왕을 알현하듯이 마음가짐을 바로 하라고 가르쳤다.

이슬람권에서 30년간 선교사역을 하는 김철수 선교사는 신(알라)을 대하는 모슬렘의 태도를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선교사가 한 손에 성경을 들고 흔들며 전도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불경하다는 것이다. 이슬람은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 경전(코란)을 가슴 위에 두고 읽는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본 모슬렘들은 기독교인을 업신 여긴다. 이슬람 권에서 선교하려면, 먼저 하나님에게 최대의 예의를 갖추라고 김선교사는 말하였다.

성균관대 유승국 교수는 유교의 예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禮)는 그 문자가 나타내준 바로는 신(神)을 제사하는 의식을 근본으로 성립된 것이다. 즉, 그 ‘示’는 신(神)을 말함이요, ‘豊’은 신께 바치는 제물이다”(유승국, 82). 유교의 예는 기본적으로 신을 섬기는 자세에서 출발하여 인간관계로 확장되었다. 공자의 예 사상을 담은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예란 제 몸처럼 여겨야 할 것과 멀리해야 할 것(친소ㆍ親疎)을 정하고, 미심쩍고 의심스러운 것(혐의ㆍ嫌疑)을 결단하며, 같은 것과 다른 것(동이ㆍ同異)을 구별하고, 옳고 그름(시비ㆍ是非)을 밝히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은 예의를 다하는가? 바울은 사랑을 예의와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다. 사람에게도 무례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도 무례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수할 때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곡식을 거둘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하였다(레19:9).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의를 갖춘 사랑이다.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있다. 그건 예수님의 반말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존댓말을 사용하는 데 예수님은 언제나 반말이다. 물론 헬라어나 영어에는 존댓말이나 반말은 없다. 한글로 번역하는 사람이 그렇게 번역하였을 뿐이다. 한글은 존대어가 매우 발달한 언어다. 번역자들은 자기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그들은 '윗사람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며, 아랫사람은 하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땅히 존대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예수님께서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려 할 때 베드로의 태도와 같다. 어찌 선생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기시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낮아지려고 오셨다. 섬기려고 오셨다. 우리의 죄 짐을 대신 짊어지고,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골고다 언덕 위로 가시기 위해서 오셨다. 눈물이 핏물 되도록 통곡하시면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자 하셨다. 우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실 만큼 사랑하시는 주님이다.

그런 주님이 소경 거지라고 반말하셨을까? 키가 작다고 깔보고 반말하셨을까? 장애자라고 무시하였을까? 난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누굴 만나더라도 예의를 갖추고 존댓말을 하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이스라엘에 존대말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마음은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말로 번역할 때 반드시 예수님의 말씀을 존댓말로 바꾸어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례하지 않다.

가끔 그리스도인 중에, 목사 중에 반말하는 사람이 있다. 무례하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 (고전13:5).

◈ 배경락 목사는 기독교 인문학 연구소 강연자로,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등의 저자이다. 그는 일상의 여백 속에 담아내는 묵상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인문학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참고도서] 유승국, 종교란 무엇인가, 왜관 : 분도출판사, 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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