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락 목사
배경락 목사 ⓒ 기독일보DB

21세기는 민족 혼합의 시대이다. 예전에는 가난과 폭정과 인신매매와 전쟁 포로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주가 있었다면 현대는 자발적 이주가 늘어난다. 가정과 사회 공동체의 해체는 빠르게 진행되면서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만 있다면, 고국을 떠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현대 문명은 이주를 가속하고 있다. 통신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 되어 한국 아이돌 가수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시대가 되었다. 교통의 발달 역시 세계를 점점 가깝게 만들고 있다. 유발 하라리 같은 학자는 이제 국경의 의미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세계는 자본주의 정신 아래 하나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슬람 국가이든, 북한 정권이든 어디든 돈의 논리 앞에 굴복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다문화 사회는 필연적으로 다종교 사회를 만든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다원주의 사회로 진입하는 데 기독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다원주의는 나쁘다. 자본주의도 나쁘다, 상황주의도 나쁘다. 세상은 나쁘다. 그렇게 손가락질만 한다면 앞으로 기독교가 설 자리가 과연 있을까?

사실 세상은 언제나 기독교에 적대적이었다. 기독교가 그 시대의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영적 영향력을 발휘하느냐,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온갖 멸시와 모욕을 받느냐는 시대와 세상을 바로 읽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그 대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스라엘은 다문화 사회, 다원주의 사회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이 열방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실천해야 했다. 가나안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애굽에서 살아야 했던 요셉, 아론, 모세와 바벨론에서 살아야 했던 다니엘, 모르드개, 에스더, 스룹바벨, 느헤미야 등은 명백히 이주자요 나그네였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나라를 이루고 살았던 이스라엘도 끊임없이 타 문화와 접촉하면서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그러므로 구약 이스라엘의 고민은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의 고민이다. 우리가 구약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주자로 살아가면 두 가지 상황에서 갈등하기 마련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고국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문화, 관습, 언어, 종교, 음식을 지키려는 욕망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하루빨리 적응하고 정착하여 그 나라의 일부가 돼야 하는 과제가 있다. 언어, 문화, 관습, 종교, 전통을 새로 익혀야 하는데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과 매번 충돌을 일으키며 그것은 곧 자기 정체성의 혼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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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갔을까?

다니엘은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포로로 끌려 왔다. 온 가족이 함께 끌려왔는지, 전쟁통에 부모가 모두 죽었는지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다니엘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는 왕의 진미를 거부하므로 민족 정체성을 고수하기로 하였다. 외국에 살면서 외국 음식을 안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니엘은 채식주의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왕의 진미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민족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결심의 한 모습으로 채식을 결심한 것이다.

그는 음식에 이어 히브리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기로 한 듯하다. 바벨론 포로 70년 동안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를 잃어버리고 아람어를 사용하였지만, 다니엘은 자기 민족어인 히브리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은 다니엘서를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쓴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다니엘서 1장에서 2장 4절까지 그리고 8장에서 마지막까지는 히브리어로 기록하였고, 가운데 부분은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바벨론의 문화와 히브리 문화에서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다니엘이 두 언어(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주자로서의 갈등과 고민을 엿보게 한다. 그는 바벨론 문화를 무조건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는 바벨론 제국에 대항하여 저항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천지 만물의 하나님께서 바벨론도 다스리신다는 확신 하였다. 왕이 주는 바벨론식 이름도 수용하였다. 일본 강점기 창씨 개명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바벨론의 학문을 다 배웠다. 그것은 바벨론 종교의 마술사들과 술객들의 학문이다. 다니엘이 바벨론의 마술사(magician, 박수)와 점성술사(술객 astrologer)가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한 타협이다.

요즘 이슬람 사회에서 예수를 믿지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쩔 수 없이 이슬람 사회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인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선교 학계에서는 ‘내부자 운동’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란에 그리스도인이 이제 400만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다니엘도 바벨론의 종교 문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마술사와 점성술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하나님 신앙을 확고하게 고백하였다. 비록 사자 굴에 던져지는 한이 있어도 그는 하나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온 우주와 만물, 세상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였다. 세상의 문화와 관습과 종교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마음이었다.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다니엘은 이주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니엘은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다니엘서를 기록하였고, 다니엘서의 사상은 곧 다니엘의 사상이다. 그는 불신 사회,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신앙이며, 그 신앙이 삶으로 나타냈다. 그는 불신 사회를 정죄하거나, 비판하거나,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선한 영향력, 영적 영향력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였다. 종교 문화적으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쉽게 살아갈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쉽게 정죄하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고, 쉽게 결정하지 않고, 고민하고 갈등하며 무엇이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또 한 번 생각하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한다.

◈ 배경락 목사는 기독교 인문학 연구소 강연자로,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등의 저자이다. 그는 일상의 여백 속에 담아내는 묵상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인문학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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