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락 목사
배경락 목사

목사에게 설교는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목사는 양을 치는 목자로서 마땅히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묵상하여 좋은 꼴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른 메시지,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열심히 책도 일고, 사색도 하고, 글도 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목회에 설교가 전부는 아니었다. 바울은 말하였다. “내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라고 하였다. 충격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천사의 말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성경에 나타나는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마리아에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한 치 오류도 없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는 진정 하나님의 대언자이다. 천사의 목소리는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산과 들이 기뻐서 메아리쳐 울린다.” 가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을 가리켜 천사의 음성을 가진 가수라고 칭찬한다. 젊었을 때 아버지는 내 목소리가 찢어지고 날카로워 듣기 거북하다고 하셨다. 설교 내용도 날카로운데 목소리마저 쇳소리를 내니 싫어할만하였다.

그러고 보니 나의 설교 내용과 설교 전달을 천사와 비교하면 감히 그 신들메를 풀기에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인간 중에서 제아무리 설교를 잘한다 해도 천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단언한다. 내가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설교는 소용없단 말인가? 사도 바울의 의도는 진리를 전하는 설교가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라 거기 반드시 사랑이 담겨야 한다는 뜻이다. 사랑 없이 하는 설교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 될 수 있다. 워렌 위어스비 목사는 말하였다. “사랑 없는 진리는 잔인한 것이라서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으며 진리 없는 사랑은 진실치 못한 것이라서 역시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다. 진리 없는 사랑은 감상적이며 책임감 없는 감정이다. 사랑 없는 진리는 삶을 변화시키는 데 무력하며, 진리 없는 사랑은 그릇된 방향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설교자가 진리를 사랑하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자신이 사역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1)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일평생 성경을 연구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통 신앙과 교리를 가졌다고 자부하였다. 자기들은 진리를 알지만, 다른 사람은 잘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돌을 던졌다. 진리에 대한 확신은 교만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진리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리까지 갔다. 사랑 없는 진리는 사람을 결코 변화시키지 못하며, 자신들이 믿는 진리마저 훼손하고 만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일까? 쉽게 변하고, 쉽게 이기적이 되고, 쉽게 타락하는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일까? 무조건 관용하고, 무조건 이해하고, 무조건 사랑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일까? 일부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위 만인 구원설이다. 부처든 마호메트이든 미신이든 무엇을 믿든 착하게만 살면 모두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마약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살인하든, 어떤 죄를 저질렀든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모두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그들은 도대체 사랑을 어디서 배웠길래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진리를 배우는 것만큼 사랑도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배운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한다. 내가 그렇게 했었다. 그런데 사랑은 어디서 배워야 할까? 신학교에선 사랑을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배워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현 시대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퍼즐 맞추기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모양으로 만드셨다. 비록 죄로 말미암아 훼손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의 사람이 가진 하나님의 모습을 보아 퍼즐을 잘 맞추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이다. 그들을 하나님 사랑하듯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 사랑을 배우게 된다.

석양 사랑하는연인 썸네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한 내용과 목적을 가진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히 나타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사랑의 메시지요 하나님 사랑의 목적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죄 많은 이 땅에 오셨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예수님은 죽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삶을 살면서도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길가에 거지가 소리 질러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마리아의 음란한 여자를 하찮게 보지 않으시고 진심으로 대하셨다. 뽕나무 위에 올라간 세리를 기꺼이 환대하셨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제자를 주님은 다시 찾아주셨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죽음으로 그들을 사랑한 이유는 한 가지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 구원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십자가)으로 완성된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복음이고 진리이다.

주님의 이 사랑을 우리는 실천할 수 있을까? 평생 2만 명 환자의 임종을 지켜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세미나마다 죽음을 생각하며 사랑하라고 강의하였다. 영원한 이별,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 곁의 사랑을 바라보라고 하였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만일 내 곁의 사람이 죽는다면 어떨까? 늘 생각하라고 하였다. 강연 후에 단정한 차림의 한 여자가 말하였다. 18살 된 아들이 여자 친구에게 받은 꼴사납고 색 바랜 티셔츠를 입은 채 식탁에 앉았는데 자연스럽게 잔소리가 나왔다.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도 염려스러웠고, 늘 함께 어울리는 패거리들도 싫었다. 그러다 엘리자베스 강연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아니 만일 아들이 죽는다면 난 얼마나 후회할까? 아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패션보다 생명이란 사실을 잊어버렸음을 알고 얼마나 후회할까? 그 생명을 사랑하고, 그 생명이 구원받기 위하여 힘쓰지 않았음을 얼마나 후회할까? 3)

종교개혁자들은 Coram Deo(하나님 앞에서)를 외쳤다. 나는 그 말을 ‘죽음 앞에서’로 바꾸고 싶다. 목사는 임종을 앞둔 자처럼 설교해야 한다. 설교자는 사랑을 담고, 사랑을 실천하며 설교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잔소리 수준을 넘어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다. 차라리 하지 않음만 못하다. 그런 면에서 나의 목회를 뒤돌아 보았다. 나는 정말 사랑으로 설교하였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재를 뒤집어써야 마땅한 사람이다. 이 글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하는 메시지다. 바울이 “내가”라는 말을 주어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을 향하여 이 말을 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 13:1). 바울은 늘 자신의 설교에 사랑을 담고 있나 반성하고 또 반성하였다.

◈ 배경락 목사는 기독교 인문학 연구소 강연자로,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등의 저자이다. 그는 일상의 여백 속에 담아내는 묵상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인문학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1) 워렌 위어스비, ‘위어스비가 권면하는 설교 원리’, 김창모 옮김 (나침반 : 서울), 1987, 55쪽
2) 찰스 링마, “행동하는 신앙인을 위한 자끄 엘룰 묵상집’ 윤매영 옮김 (죠이선교회 : 서울), 2004. 303쪽
3)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수업’, 류시화 옮김 (도서출판 이레 : 경기) 2008년, 38~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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