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잠실 개표소 시위가 주말에도 이어졌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마련된 잠실 개표소 주변에는 7일에도 많은 시민이 모여 재선거를 요구했다. 시위는 지난 5일 시작된 뒤 사흘째 계속됐으며, 현장에 모인 시민 상당수는 20·30대 청년층이었다.
시민들은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투표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사태를 참정권 침해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부실을 비판하며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 재선거 실시를 요구했다. 현장에서는 “재선거”를 외치는 구호와 함께 “참정권 침해”를 비판하는 손팻말이 곳곳에서 보였다.
경찰 추산에 따르면 7일 오후 8시 기준 잠실 개표소 주변에는 3만8700여 명이 모였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에서도 이날 오전 9시께 8500여 명 수준이던 올림픽공원 일대 인파가 오후 5시께 3만2000여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밤에도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3만 명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시민 반발이 주말을 지나며 더 확산되는 흐름을 보였다.
시위대는 잠실 개표소 출입구 주변에서 투표함 반출과 개표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개표소 주출입구 앞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물품을 나르고, “재선거”라고 적힌 종이를 나눠주며 질서 유지에 나섰다. 현장에 별도 지휘부나 주도 단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참여자들은 대체로 구호와 행동 방식을 통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 2030세대 중심으로 확산된 참정권 시위
잠실 개표소 시위에 참여한 20·30대 시민 다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 소식을 접한 뒤 현장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특정 정당의 유불리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민주주의의 기본 절차를 흔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투표는 국민이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데,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중단이나 혼선이 발생했다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컸다.
사흘 연속 시위에 참여했다는 한 시민은 이번 집회가 특정 단체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며 정치색과 무관한 참정권 회복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으로서 투표권이 침해됐다는 분노가 현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또 기존의 부정선거 주장 세력과 이번 시위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파구에서 현장을 찾았다는 또 다른 시민도 정치적 입장을 떠나 참정권을 지키지 못하면 앞으로 선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주말 내내 현장을 찾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유권자의 문제라고 말했다.
◈ “정치화 말라” 부정선거 주장 세력과 거리두기
잠실 개표소 시위의 또 다른 특징은 참여자들이 정치화와 음모론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장에서는 “재선거”, “참정권 침해”, “애국가만 외쳐주세요”, “선동하거나 선동당하지 마세요” 등 정치적 오해를 줄이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일부 정치인과 유튜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온 인사들이 현장에 합류하려 했지만 시민들의 반발을 받았다. 참여자들은 이번 시위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문제 제기이며, 기존의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주장과 섞일 경우 참정권 침해 비판의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이날 새벽 시위 현장을 찾았다가 일부 참여자들로부터 제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해 온 유튜버 전한길 씨도 한때 시위에 합류하려 했지만, 시민들의 항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는 “정치화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성조기 사용을 자제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일부 참여자는 다른 나라 국기를 흔드는 모습이 언론과 대중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며 태극기만 흔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한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이 들어간 성조기가 등장하자 참여자들 사이에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민들은 시위의 상징을 재선거와 참정권 회복 요구로 제한하려 했다.
◈ 투표함 반출 과정과 경찰 대응도 논란
시위 참여자들은 투표함 반출 과정에서 경찰이 시민들을 강제로 해산한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지난 5일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함이 잠실 개표소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시민들과 경찰 간 대치가 벌어졌고, 일부 시민단체는 이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대응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 박정보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와 현장 경찰관들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이 단체는 경찰이 투표함을 반출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과잉 진압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일 잠실 개표소로 이동된 투표함은 아직 경기장 내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투표함 외에도 투표지 분류기와 계수기, 개표용 테이블, 상황표 등 개표 관련 장비가 반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표소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전날 경기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선관위는 이에 대해 공식 확인을 하지 않고 있다.
개표소 각 입구 앞에서는 시위 참여자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큰 충돌 없이 집회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하루 동안 폭력이나 싸움 신고가 접수된 것은 없었다며,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 이재명 대통령, 검경 합동수사본부 구성 지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정치권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이재명 대통령도 강도 높은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7일 “신뢰를 잃은 독립기관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며 검찰과 경찰이 참여하는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사안을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 문제로 규정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부실과 사후 대응, 국민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는지 여부도 향후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검경 합동수사본부 구성 논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8일 오후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등 4부 요인과 회동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관위 대응, 국정조사 및 제도 개선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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