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사태는 국민의 참정권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선거를 엄정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헌법 기관이 도리어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해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렀다는 점에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서울 송파구의 12개 투표소, 강남구와 광진구의 각 1개 투표소 등 14개 소에서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사 결가 인천과 울산을 비롯해 22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일시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투표용지 부족사태에 대해 선관위는 전체 유권자 수의 50%만 인쇄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선관위가 예산은 110% 증액하고도 무슨 근거로 유권자의 절반 이하의 투표지만 준비한 건지 납득이 안 된다. 선관위가 이번 지방선거부터 투표지를 기존 60%에서 50% 낮춘 게 근본 원인이라고 하는데 호남 등 여당 우세지역에선 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6,3 지방선거를 대비해 투표용지를 더 많이 인쇄하기 위해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도 유권자 수의 절반만 인쇄했다면 그 돈이 어디로 샜는지도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선관위의 해명에도 의혹이 풀리지 않는 건 이번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벌어진 송파구 등 강남 일대 투표소가 국민의힘 서울시장에 출마한 오세훈 후보의 절대 강세지역으로 분류된 곳이란 점이다. 다른 지역에선 문제가 없었는데 왜 하필 야당 후보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만 투표용지를 적게 준비했는가가 문제다.
국민 찬정권이 침해당한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잠실7동 제2투표소를 에워싸고 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등 시위가 격화하자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5일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족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사과 기자회견에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 한 것을 놓고도 시끄럽다.
문제를 일으킨 기관이 스스로 뭘 조사하겠다는 건가. 선관위는 애초부터 자기 문제를 스스로 바로잡을만한 기관이 아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 291차례나 경력직 공무원 채용 비리 또는 규정 위반이 일어났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던 게 선관위다. 이번 사태를 놓고 이재명 대통령도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명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한 두 사람 책임지고 물러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만일 여당이 이 문제를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 한다면 일각에서 주장하는 부정 선거 의심이 더 짙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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