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휴전 연장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 체결을 놓고 막판 조율을 이어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팀에 “합의를 서두르지 말라”고 지시하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양측의 합의 기대감에 국제유가는 급락했지만, 실제 원유 수송과 에너지 공급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은 24일 현지 시간으로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한 최종 합의에 도달하기 전까지 휴전을 60일 연장하는 기본 합의 틀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논의에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군사 작전 중단, 제재 완화, 이란 핵 문제 처리 방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이 공식 합의문에 서명할 경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즉시 재개방하고, 30일 안에 해협 통항량을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란의 이행 상황에 맞춰 봉쇄 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는 아직 이란과 공식 합의문에 서명한 상태는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합의 틀은 이란 측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는 단계이며, 법적 구속력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제안에는 미국과 이란뿐 아니라 양측의 동맹 및 연계 세력까지 포함해 레바논을 비롯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 작전을 중단하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첫 관문…미국은 “이행 전 보상 없다”
미국 행정부는 이번 논의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이란의 실제 이행을 전제로 한 단계적 합의 구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이번 접근법을 두고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원칙보다 훨씬 강화된 방식”이라고 설명하며, 이란이 먼저 구체적인 조치를 이행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합의의 출발점이자 첫 검증 단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재개는 국제 에너지 시장 안정과 직결된다. 미국은 해협 내 통항 회복 속도와 항행 안전 확보 여부를 지켜보며 봉쇄 완화와 제재 조정 폭을 결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측에서는 미국의 봉쇄 해제와 함께 해협 내 기뢰 제거, 동결 자산 일부 해제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이란 관리는 첫 단계로 미국이 동결된 이란 자산 120억 달러를 해제하고, 호르무즈 해협 내 기뢰 제거와 봉쇄 해제가 병행될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 핵 문제 놓고 미국·이란 설명 엇갈려
핵 문제는 이번 협상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미국 측 설명에 따르면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합의된 방식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른바 ‘핵 먼지’로 표현되는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포기가 협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다만 고농축 우라늄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지, 이란 영토 밖으로 반출할지, 국제기구의 검증을 어떤 절차로 받을지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양측은 향후 두 달 동안 우라늄 처리 방식과 검증 절차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메커니즘을 협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란 측은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이란 관리는 이번 양해각서에 핵 합의 자체가 포함된 것은 아니며, 핵 문제를 추후 별도 협상을 통해 다루겠다는 약속만 담겼다고 주장했다. 동결 자산 해제와 제재 완화 역시 이란이 합의 내용을 어느 수준까지 이행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 트럼프 “완전히 협상된 상태 아니다”…검증 강조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신중론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합의는 아직 완전히 협상된 상태조차 아니다”라며 “양측 모두 시간을 갖고 제대로 해야 한다. 실수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하루 전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포함한 합의가 “대체로 협상됐다”고 언급하며 조만간 세부 내용을 발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후 협상팀에 합의를 서두르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최종 서명 전까지 세부 조건과 이행 절차를 더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기류가 강해졌다.
이스라엘도 합의 내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종 합의가 이란 핵 위협 제거를 포함해야 한다며, 이는 핵농축 시설 해체와 고농축 핵물질의 이란 영토 밖 반출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합의안에는 이스라엘이 “임박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은 유지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 합의 기대감에 유가 급락…공급 정상화는 장기화 전망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국제유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브렌트유는 금요일 종가보다 4% 내린 배럴당 99.41달러를 기록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도 4.3% 하락한 배럴당 92.44달러를 나타냈다. 시장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가 현실화될 경우 원유 공급 불안이 완화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주요 증시도 강세를 보였다. 한국 증시는 석가탄신일 대체공휴일 연휴로 휴장한 가운데, 일본 닛케이 지수는 3% 오른 6만5223.86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6만5000선을 넘어섰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 항셍지수도 각각 0.6%, 0.9% 상승했다. 미국 증시는 메모리얼데이로 휴장했지만 주가지수 선물은 상승 흐름을 보였다.
다만 실제 에너지 공급 회복은 단기간에 끝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에너지 리서치업체 클리어뷰 에너지 파트너스는 호르무즈 해협 내 기뢰 제거와 발이 묶인 유조선 이동, 생산 재개에는 수 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손상된 시설 복구와 전쟁 이전 수준의 생산 회복, 고갈된 재고 재축적에는 수 분기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이번 협상 진전은 파키스탄과 카타르 중재단이 최근 테헤란에서 수일간 고위급 협상을 진행한 이후 급물살을 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 2월 말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으며, 이후 4월 8일부터 불안정한 휴전이 유지돼 왔다.
미국과 이란이 최종 합의문에 서명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휴전 연장은 중동 정세와 국제 에너지 시장의 중대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핵 문제 처리 방식, 제재 완화 순서, 동결 자산 해제 규모, 이란 및 연계 세력의 군사 행동 중단 여부를 둘러싼 이견이 남아 있어 최종 합의까지는 막판 진통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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