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미국을 향한 52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공식화하면서 우리 경제계에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일본의 결정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미국 정부가 동맹국들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투자 압박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 역시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투자 이행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약속된 프로젝트가 지연될 경우 관세 재인상이라는 강력한 제재가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일본의 이번 투자는 지난해 양국이 합의한 총 5500억 달러(약 797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 중 첫 번째 결과물이다. 특징적인 점은 투자 대상 선정과 운영권 전반을 미국 정부가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반적인 해외 직접 투자와는 궤를 달리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수익 배분 구조 역시 일본이 투자 원금을 회수할 때까지만 절반을 가져가고 이후에는 수익의 90%가 미국에 귀속되는 불공정 논란을 안고 있다. 사실상 인프라 주권을 넘겨준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서둘러 360억 달러 규모의 1차 프로젝트를 확정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그만큼 거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확정한 프로젝트에는 텍사스주의 원유 수출 시설 구축과 오하이오주의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등이 포함되어 있어 미국의 에너지 자산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일본의 이러한 행보는 한국 정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미국 측은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이 신속하게 이행되지 않을 경우 과거 완화했던 25%의 관세를 다시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일본의 투자 확정 소식이 전해진 직후 산업통상자원부 실무진을 미국으로 급파해 투자 의지를 재확인하고 협상에 나섰다.

◈한미 경제 협력의 핵심 분수령, 3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와 실무 협상 가속화

정부는 미국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오는 3월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인 대미투자특별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어야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를 가동할 수 있는 법적·행정적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박정성 산업부 통상차관보가 이끄는 실무협상단은 법안 통과 이전에 미 상무부와 긴밀히 접촉하여 투자 대상 사업을 미리 조율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고의로 투자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관세 재인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합의한 투자 규모는 연간 200억 달러 한도의 상업적 투자 2000억 달러와 조선 협력 분야 1500억 달러를 합쳐 총 35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에너지와 자원, 인프라 분야가 핵심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원전 분야는 한미 양국의 이해관계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지점으로 꼽힌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 설계 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를 거느리고 있지만, 정작 이를 실제로 건설하고 기자재를 공급할 인프라는 한국에 비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2050년까지 원전 용량을 현재보다 4배 늘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도 한국에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신규 원전 건설 경험이 부족해 단기간 내에 대형 원전 10기를 착공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과 공기 준수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의 야심 찬 계획을 현실화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지 선정부터 인허가까지 막대한 시간이 소요되는 원전 사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국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원전 건설 및 기자재 공급을 중심으로 한 대미 투자 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폭증과 전력망 현대화, 그리고 조선업 재건의 꿈

에너지 분야 외에도 미국의 노후화된 전력망을 재정비하는 사업이 한미 협력의 유망한 프로젝트로 거론되고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에 따른 데이터센터의 기하급수적 증설로 미국의 전력 인프라는 전례 없는 부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전력 송배전 시스템은 이를 감당하기에 너무 노후화된 상태다. 고전압 송전 기술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통해 이 시장에 진출한다면, 미국은 전력난을 해소하고 한국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윈윈(Win-win) 전략이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건설과 소형모듈형원자로(SMR),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차세대 에너지 솔루션 전반이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정부는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단순 자본 투하(Capital Expenditure)나 일방적인 자금 지원이 아니라, 미국 내 강력한 공급망 거점을 확보하는 전략적 자산화 과정으로서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이 미국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한미 경제 협력의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연계된 전력 그리드 사업은 향후 수십 년간 미국 인프라 시장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실무단의 협상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선 분야에서의 협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축이다. 미국은 최근 자국 조선업의 경쟁력 약화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해양 행동계획(MAP)'을 발표하고 한국의 조선 기술력에 손을 내밀고 있다. 총 1500억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는 함정 유지·보수(MRO)부터 신규 건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협력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가 현재 미국 측과 긴밀한 논의 단계에 있으며, 특별법 제정 직후 합의를 거쳐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이 일본의 대미 투자 행보에 뒤처지지 않고 실리를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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