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간 한미 관세협정이 체결됐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에 통상 환경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미 관세협정 이후에도 관세 인상 가능성이 재차 거론되면서 대외 통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일시적인 변동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동안에는 유사한 국면이 반복될 수 있다며, 우리 정부가 협상력 제고를 위한 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한미 전략적 투자 이행 본격화…대미투자특별법 통과 전 선제 조치
16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3일 ‘한미 전략적 투자 업무협약(MOU) 이행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임시 추진체계를 가동했다. 정부는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대미투자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기다리지 않고 주요 대미 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검토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측의 합의 이행 의지를 지적하며 대미투자특별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여야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법안 통과를 위한 논의에 돌입했다. 정부는 대미투자특별법이 제정될 경우 현재 거론되는 25% 수준의 관세가 15%로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물밑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이행 노력과는 별개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25%로 인상하기 위한 관보 게재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정상 간 한미 관세협정이 이뤄졌음에도 관세 인상 카드가 언제든 재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 일본·스위스 사례로 본 트럼프식 협상…관세 정책 변동성 확대
이번 국면에서 통상 압박을 받는 국가는 우리나라만이 아니었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지적하며 불만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산업상은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투자 대상 후보를 논의했다. 합의 이후에도 투자 이행 속도와 가시적 성과가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에는 스위스 정상의 협상 태도를 문제 삼아 관세를 9% 추가 인상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관세 정책이 수시로 변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 관세협정의 안정성 역시 구조적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협상 방식이 비즈니스 관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정상 간 합의와 별개로 세부 이행 상황이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관세 인상 카드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상 환경이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 “트럼프 2기 동안 반복 가능성”…비관세 장벽도 주요 변수
이홍배 동의대 무역학과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동안에는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간선거 이후 변화 가능성은 있으나, 당분간은 불확실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새로운 통상 쟁점이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과 구글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 등 비관세 장벽 이슈가 추가 협상 의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대미투자특별법은 시기의 문제일 뿐 늦어도 3월에는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온플법이나 고정밀 지도 반출과 같은 비관세 분야는 현재 논의 진척이 제한적이어서 향후 지속적인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관세협정 이후에도 관세 인상 가능성과 비관세 장벽 문제가 병행될 경우, 국내 기업과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기업의 투자 판단과 수출 전략 수립에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 협상력 제고 방안은…원전 산업 ‘제2의 마스가’ 지렛대 가능성
전문가들은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아웃리치를 강화하고, 대내적으로는 선제적 대응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홍배 교수는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협의 상황을 공유해야 한다”며 “미국이 협상을 비즈니스 개념으로 접근하는 만큼, 진행 상황을 명확히 보여주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철우 교수 역시 “미국이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본격적인 요구에 나서기 전에 여야와 정부, 기업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대응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며 “국내 규제 체계도 국제 통상 환경 변화에 맞춰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원전 산업이 조선 산업에 이어 새로운 협상 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에 이어 원전 분야가 ‘제2의 마스가’로 부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백 교수는 “미국 원전 투자 확대를 계기로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술 독립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며 “한국형 APR1400 노형을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국내 원전 생태계 육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한미 관세협정 체결 이후에도 관세 인상과 비관세 장벽이라는 변수가 상존하는 가운데,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정치권, 산업계가 협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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