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온누리교회 화평홀에서 ‘정교분리, 올바른 이해’를 주제로 제115회 월례학술포럼 기도회 및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월례학술포럼은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둘러싼 신학적·역사적 논의를 중심으로, 정교분리의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개회예배와 학술발표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종교개혁 전통 속에서 형성된 정교분리 개념과 한국 사회 및 교회의 역사적 경험이 함께 논의됐다. 기독교학술원은 정교분리에 대한 오해와 단순화된 이해를 넘어,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 속에서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개회사를 전한 김영한 박사는 정치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강조했다. 김 박사는 “정치와 교회는 구분된 것이지 분리된 것이 아니다”라며 “교회는 정치가 정의롭게 펼쳐지도록 기도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회가 사회와 정치 현실로부터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인식한 가운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종교개혁신학 관점에서 본 정교분리의 의미
첫 번째 발제는 이양호 교수(연세대 명예교수)가 ‘정교분리-종교개혁신학 관점’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중세 시대 종교와 정치의 밀접한 결합에서부터 종교개혁 시기의 변화 과정을 짚으며 정교분리 개념의 형성과 전개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중세 시대에는 종교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교황권이 왕권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펼쳤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교황권은 정치 권력 위에 군림하며 종교와 정치가 사실상 분리되지 않은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교개혁 시기 재세례파의 입장을 언급하며 “이들이 정치와 종교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했다”며 “재세례파는 시민 공동체와 신앙 공동체를 엄격히 구분했고, 신앙인이 정부의 관리가 되거나 군대에 복무하는 것, 세금을 납부하는 것조차 거부해야 한다고 보았다. 전쟁에 대해서도 어떤 경우에도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평화주의를 고수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재세례파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며 “루터와 칼빈은 정치와 종교가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완전한 분리가 아닌 상호 협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치가 종교에 간섭해서는 안 되지만, 종교는 정치가 잘못될 때 비판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특히 “루터는 종교가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정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칼빈 역시 정치의 종교 간섭에 대해서는 저항해야 한다고 보았다”며 “다만 칼빈은 종교가 정치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양심적인 정치인을 길러내 이를 통해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했다.
◆ 역사신학적 접근으로 본 정교분리의 변화와 적용
두 번째 발제는 이은선 교수(안양대 명예교수)가 ‘정교분리-역사신학적 접근’을 주제로 진행했다. 이 교수는 정교분리가 단일하고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종교개혁자들이 행정 관리들과 협력하며 개혁을 추진했던 역사적 맥락을 언급하며, “칼빈이 교회의 영적이고 독립적인 치리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교구분을 강조했다”며 “반면 재세례파는 국가와 교회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며 더 급진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했다.
이어 “유럽에서 국가교회 체제가 형성된 이후, 국가교회 밖에 있던 이들이 박해를 받았고, 이러한 상황을 피해 다양한 교파의 기독교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됐다”며 미국에서 정교분리가 수정헌법 제1조에 명시된 배경을 설명하며 “이는 국가가 특정 교회를 후원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였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정교분리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속화 원리로 해석되면서, 국가가 종교와 관련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강화됐고, 그 결과 공립학교에서 기도가 금지되는 등 제도적 변화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경우, 1901년 장로교의 정교분리 선언 배경도 함께 다뤄졌다. 당시 일본의 비난과 미국 정부의 요청 속에서 선교사들이 교회가 정치 문제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교분리를 선언했다”며 “그러나 이러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3·1운동과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이후에는 공산주의 반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1970~1980년대에는 진보 교회들이 독재에 맞서 현실 참여를 강화했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이러한 흐름이 약화된 반면, 보수 교회들이 정치 참여를 확대했다”며 현재 한국 사회의 상황 속에서 보수 복음주의 교회가 정교분리 원칙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시민운동 형태로 사회에 참여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한편, 개회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최이우 목사(종교교회 원로, 전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는 ‘천하만국과 그 권세의 영광으로 이루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최 목사는 정교분리의 핵심으로 국교 부정과 신앙의 자유 보장을 꼽았다.
최 목사는 “만약 국교가 지정되면 개인의 신앙 자유는 이루어질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종교와 정치의 관계가 불분명해지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며 “각 영역이 제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 나갈 때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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