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정성구 박사

나는 60년 전 어느 고등학교 정문에,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다”라는 글귀를 보았다. 어찌 보면 참으로 싱거운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말이 왜 우리의 마음에 와닿을까? 대부분 학교의 교훈하면, ‘노력’ ‘성실’ 같은 말이 단골인데,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다”라는 말이 지금도 내 가슴에 또렷이 남아 있다. 세상에는 앞으로 가려 해도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마음은 앞으로 가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전혀 발을 옮겨 놓을 수 없는 사람도 많다. 흔히 사람들은 걷는 것은, 자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앞발이 나가면 뒷발이 따라가게 되고, 급하면 뛰면 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걸으려는 의지가 있어도, 걸을 수 없는 자들이 있다. 그러니 걸어서 앞으로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은 기적이요, 축복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일제 강점기 때라, 나라에 흉년이 거듭되어 사람들은 살길이 없어 모두가 가난했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시절에 나는 참으로 병약하게 태어나서, 생후 네 살이 되도록 서서 걸을 수가 없었다. 마치 오늘의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나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일어설 힘도 없고 걸을 수 없었다. 그러니 부모님은 나를 포기한 상태였고, 나는 네 살이 지나서야 겨우 혼자 설 수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활발하게 앞으로 걷지를 못했다. 그런 가운데 해방을 맞았고, 10살 때,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6.25라는 크나큰 전쟁을 겪어야 했다. 나는 피난하는 가족을 따라, 정처 없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에, 남의 집 처마 끝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방공호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부모를 따라 피난 대열에 끼어 울산 방어진까지 갔었다. 나는 오늘의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것을 친히 경험했고 본 셈이다. 국군과 인민군의 피아간에 사격과 폭격으로 몸서리를 쳤다. 다행히도 휴전되었지만, 모든 것이 잿더미로 화해서, 집도 없고 학교도 불타고 없어 떠돌이 공부를 했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제일 싫은 과목이 체육이었다. 그래서 체육 시간이 돌아오면 가능한 한 친구들의 옷을 지키는 자로 남아 있었다. 그토록 참 부실한 나였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하여 공부도 하고, 그 후 장성하여 신학을 한 후 주의 일에 전심전력했다. 병약해서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나였지만, 그동안 셀 수 없는 세계 여러 나라에 복음을 증거 하면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갔었다. 그러니 목표를 가지고 가고 싶은 데를 가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십수 년 전에 중병을 앓은 후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겨우 세 걸음을 걷고 나면 푹 쓰러지는 것이었다. 다리에 근육이 다 빠져, 큰 병원에 가도 의사들은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병원을 갈 때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그때 나는 ‘걷는다는 것이, 참으로 커다란 은혜요, 축복이구나!’라는 것을, 그 제야 깨달았다. 나는 깊은 절망 속에서 걷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맸다. 결론은 ‘재활치료’를 받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70대쯤 보이는 어느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절뚝 걸어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체 마음속으로, ‘저 정도만 되도 좋겠다!’라고 그 노인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약 한 달 반 만에 조금씩 걸을 수 있게 하셨고, 또 동네에 있는 헬스장에서 한두 달을 단련 후에 정상이 되었다.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길을 잃으면 한 걸음도 옮기기가 쉽지 않다. 방송과 신문은, 우리나라가 세계 6대 강국이다. 무역흑자가 났다고 떠들고 있지만, 여전히 모두가 가난한 세상을 살고 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라는 말씀이 있듯이, 약자들은 더 약해지고 젊은이들은 PC방에서 칩거하고 있거나, 그냥 놀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해도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다. ‘앞이 캄캄할 때 기도하라’고는 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에 응답지 않고 있다. 어떤 이는 ‘한국에 IMF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라는 섬뜩한 말을 하는 이도 있다.

밝아오는 새해 우리나라는 비상시국이다. 물론 전 세계도 비상시국이다. 러·우 전쟁, 이스라엘의 전쟁이 언제 종식될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럴수록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할 일이 무엇일까를 분별하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정치꾼들을 아예 믿지 말고, 새로운 상황에 낙심할 것도 없다. 어차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생이다’(렘17:9)라고 했으니, 인생에게 소망을 둘 필요가 없다. 영원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졌다면, 매 순간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고, 역사를 이루어 갈 것이다. 금 년 한 해 우리의 가는 길에, 평탄한 길, 아름다운 둘레길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가시밭, 돌밭이 있고, 홍해와 여리고 성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일단 발을 디디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할 때 금 년 한해 우리 앞의 철옹성 같은 문제들이 평지가 될 것을 확신한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라는 찬송이 오늘의 찬송이었으면 한다. 금년 한 해도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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