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일보는 김철홍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신약학)가 최근 서울 서현교회 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제316회 월례세미나에서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개종과 기독교가 그의 정치사상에 준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을 연재합니다.

5. 우남의 기독교 정치사상의 구조

1) 영혼의 구원은 곧 정신의 혁명이다

김철홍 교수
김철홍 교수

우남은 1904년 11월 『신학월보』에 쓴 글에서 “… 이 나라를 예수그리스도의 나라를 만들기로 힘써 일들 하십시다” 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우남의 ‘기독교 입국론’이 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남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정교일치의 국가가 아니라, 기독교를 국민 교화의 근본으로 삼는 세속국가였다.” 한성감옥에 있을 때부터 우남은 정치와 교회를 구별하여 혼동이 되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교분리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기독교가 갖고 있는 ‘인간 교화(敎化)’의 가능성이었다. 법과 제도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능동적인 변화를 통해 정신의 혁명을 경험한 새로운 인간 없이는 근대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감옥에서 석방될 무렵인 1904년 8월에 『신학월보』 실린 “대한 교우들의 힘쓸 일”이란 글에서 우남은 “셋째는 모든 죄악에서 사람을 풀어 놓으심이니 … 이 세상 있는 줄만 알고 이후 영원한 세상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는 중에 각각 저 혼자만 살고 오늘 하루만 살려 하는 고로, 서로 잔멸하여 일체로 멸망에 빠지는 바라”고 말한다. 분명히 그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내세(來世)의 영혼의 구원을 구원으로 보았다. 우남은 기독교의 영혼의 구원을 단순히 내세(來世)의 구원으로만 보지 않고 현세(現世)에서 일어나는 ‘정신혁명’으로도 본 것이다.

2) 정신적 노예 상태에 있는 국민이 자주권을 행사하는 개인이 되어야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다

『독립정신』의 “국민의 마음이 먼저 자유로워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은 우남이 갖고 있던 자유에 대한 초기 사상을 잘 보여준다. 우남은 “마음의 결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의 출발점으로 본다. 국민의 마음이 다 노예상태라는 것이다. “대한 교우들의 힘쓸 일”에서 “… 노예의 생각만 길러서 남의 충실한 종이나 될 뿐이니 남의 종질도 충실치 못한 이 보다는 낫다 하려니와 하나님이 동등으로 주신 권리를 회복하는 본의는 어디 있으며 …”라고 말한 것도 생각이 노예의 상태에 있는 당시 국민들의 정신 상태를 지적하는 말이다. 노예의 상태는 자율성의 부재를 가리킨다. 우남이 독립정신에서 8가지 폐단을 지적할 때 “사람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관리들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8가지 폐단은 한 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결박하여 자주권(自主權, 아무런 속박이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할 수 있는 권리)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데서 오는 폐단이다”라고 말한다.

우남은 국민이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야 정치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국민들이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행사하는 개인으로 변화될 때 국가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대한 교우들의 힘쓸 일”에서 우남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이웃 친구와 나의 나라 동포와 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여 내자 함이 예수교의 제일 주장되는 대지(大旨)이거늘 이것을 모르고 …” 우남은 기독교인의 사명을 그저 ‘낮은 수준’의 이웃 사랑(예, 가난한 자 구제)으로 보지 않고, ‘높은 수준’의 이웃 사랑인 제대로 된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으로 보았다.

3) 교회에서 복음과 사회·정치를 연결하여 가르쳐 올바른 관점을 가진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

우남은 기독교적 정신 혁명이야 말로 진정한 정치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개신교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고, 자유민주주의는 개신교의 정치적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우남이 생각한 정신의 혁명은 현대어로 옮기면 ‘세계관의 전환’이다. 기독교 복음이 갖고 있는 잠재력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생겨나는 인간의 내면의 변화이며, 그것은 곧 관점의 변화고 세계관의 변화다. 관점의 변화는 정치적인 면에서 그 개인이 독립적인 자유인으로서 각성하여 자유 민주 시민의 기본적 소양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교회가 그런 개인을 양산(量産)해내지 못한다면 신생 국가의 자유민주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1903년에 『신학월보』에 발표한 “두 가지 편벽됨”이란 글에서 우남은 교회를 통한 교화(敎化)를 추진할 때 발생하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두 가지 문제점이란 1) 정치(政治)상에 조급히 생각함, 2) 교화에 편벽되이 주의 함이다. 첫 번째 문제는 이런 것이다. “대한에 장래는 예수교에 달렸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교회에 들어간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모두 복음을 어찌 전파하며 사람을 어찌 교육 시킬 일로 의논”하고 있을 뿐, “정사가 어떠하며, 법률이 어떠함”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이야기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교(敎)에만 혹(惑)할 뿐”이라고 실망하고 교회를 떠난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런 것이다. 동일한 동기로 어떤 사람이 교회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동일한 이유로 실망한다. 그 사람은 교회를 떠나지 않지만 교회 안에 남아 “세상시비에 상관하지 말며 믿음으로써 일후에 영원한 복이나 구하리라”고 결심하고 나라가 어떻게 되건 상관 않고 자신의 집안과 친척 친구들의 복을 구하는 기복신앙에 빠져 살아간다.

여기에서 우남이 지적하는 문제는 이것이다.

1) 사회와 정치에 관해 교회에서 가르치되 기독교 복음과 연결해서 가르쳐야 한다. 사회와 정치 문제를 복음과 연결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2) 그렇게 하더라도 교화시키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조급하게 생각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

우남은 같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 교회에서 마땅히 정치상 관계를 가까이 아니할 근본이라. 그러나 정치는 항상 교회본의로서 딸려나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 잡히나니 이럼으로 교화로써 나라를 변혁하는 것이 제일 순편(順便)하고 순리한 연유(緣由)이라. 이것을 생각지 않고 다만 정치만 고치고자 하면 정치를 바로 잡을만한 사람도 없으려니와 설령 우연히 바로 잡는다 할지라도 썩은 백성 위에 맑은 정부가 어찌 일을 할 수 있으리오. 반드시 백성을 감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한 후에야 정부가 스스로 맑아질지니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요.”

1903년에 우남이 지적한 문제는 지금 한국의 교회에서 지금도 발생하는 문제다. 교회 안에서 복음과 정치는 서로 유리된 채, 잘못된 정교분리의 원칙만을 지키려고 할 뿐이다. 교회가 “대한의 장래”가 되려면 복음을 가르치고 배울 때, 복음의 원칙이 인간의 사회적 삶, 정치적 행동에 어떻게 연결되고 적용되는 지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본 우남의 생각은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우리가 다시 들어보아도 옳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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