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방문한 자리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당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 없다”라고 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재명 후보에 대해 보수 기독교계에 확산하는 부정적 인식을 가라앉히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송기헌·이용선 의원 등은 지난 27일 오후 한기총 사무실을 방문해 대표회장 고경환 목사 등과 환담을 나눴다. 이 두 의원이 대선을 앞두고 한기총 등 연합기관을 차례로 순방하는 목적은 대선과 관련해 당내 종교를 총괄하는 두 의원의 위치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의원의 한기총 방문은 앞서 NCCK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때와는 공기와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였다. 아무래도 이 후보에 대한 보수 기독교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됐기 때문일 것이다.

교계가 이재명 후보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몇 가지 사안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평소 소신일 것이다. 이 후보가 오래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강한 의지를 반복적으로 밝히면서 이에 대한 거부감이 쌓인 게 원인이다.

한기총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거론됐다. 배석한 임원이 “차별금지법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충돌한다”라고 지적하자 두 의원이 한목소리로 “더불어민주당 차원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할 계획은 없다”라고 진화에 나선 것이다.

‘차별금지법’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그 어느 대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부상하는 양상이다. 오랫동안 반대 여론을 주도해 온 교계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이처럼 커다란 쟁점이 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런데 21대 대선을 앞두고 ‘차별금지법’ 이슈를 뜨겁게 달군 선봉장은 뜻밖에도 기독교계가 아니었다. 지난 18일 열린 대선 후보간 첫 TV토론 자리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교계 안으로 역주행하는 모양새가 된 거다.

출발은 이랬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느냐”고 질문하자 이 후보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방향은 맞지만, 너무 복잡한 현안이 얽혀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대답한 거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처럼 취급돼 온 ‘차별금지법’에 대해 국내 진보 정당의 명맥을 잇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가 추진에 관심을 갖는 건 하등에 이상할 게 없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이 후보가 비교적 신중한 견해를 밝히면서 부수적인 파급력을 발휘하는 건 뜻밖의 현상이다.

이 후보는 지난 2022년 1월 신경제 비전선포식 자리에서 “형법상 평등의 원칙이 각 분야에서 사회 각 분야에서 각 영역에서 실현돼야 한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라고 했다. 2017년 3월 한국여성대회에선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에 성소수자가 30%를 반드시 넘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당연하고 더 나아가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여러 차례 ‘차별금지법’ 제정에 굳은 신념을 드러냈던 이 후보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비교적 신중한 입장으로 선회한 배경이 무엇일까. 우선 기독교계, 특히 보수 진영의 반대 여론을 크게 신경쓰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일단 여지를 남기는 발언으로 급한 불을 끌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 교계 여러 단체가 ‘차별금지법’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도 그 배경 중 하나일 수 있다.

한기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두 민주당 의원이 언급한 ‘차별금지법’ 문제는 앞서 9일 NCCK와 13일 한교총 방문에선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게 NCCK와 한교총 대표 관계자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까지 이 문제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차별금지법’ 문제는 기독교를 상대하는 민주당의 입장에서 굳이 거론할 이유도 없고, 먼저 꺼내서 득 될 게 없다. 과거 국회에서 수차례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소속 의원들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당이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기총을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이 “당 차원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라고 한 발언은 이 후보가 TV토론에서 “신중히 해야 한다”며 유보적 의견을 밝힌 것과 내용 면에서 차이가 없다. 그 말의 본심은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당장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후보가 TV토론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방향은 맞다”라는 전제를 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도 동의하고 옳은 일이란 의미다. 하지만 대선에 출마한 입장에서 당장 추진하겠다고 하면 반발에 부딪힐 게 뻔하니 일단 뒤로 미루겠다는 거다. 이는 곧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재명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만들겠다. 나는 이걸 바꾼 적이 없다”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교계를 방문할 때마다 늘 강경했던 자신의 발언 수위를 스스로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의원들이 한기총에 가서 “‘차별금지법’을 당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 없다”라고 한 말을 놓고 교계 안에서 여러 해석이 구구하다. 이재명 식(式) 화법이 또다시 논란이 되자 진화 차원에서 한 말이겠지만 한국교회 성도들과 대다수 국민이 정말 원하는 건 이런 우회적이고 유화적인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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