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대로 하향 조정하면서, 국내외 복합 요인이 맞물린 경기 위축을 경고했다. 건설업 침체와 소비 둔화, 미국의 관세 강화, 그리고 국내 정국 불안까지 복합적인 충격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KDI는 14일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5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2월 제시한 1.6%에서 무려 0.8%포인트나 낮아진 수치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브리핑에서 “대외적 요인과 대내적 요인이 각각 0.5%포인트, 0.3%포인트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장을 구성하는 주요 지표들도 일제히 부진을 보일 것으로 관측됐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1.4%로 예상됐으며, 총고정투자는 전년 대비 0.9%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건설투자의 경우 4.2%의 큰 폭 하락이 예측돼 건설업 전반의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출 또한 전망이 어둡다. KDI는 올해 총수출 증가율이 0.3%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상품 수출은 오히려 0.4%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총수입은 0.8% 증가해, 이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 990억 달러에서 올해 920억 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시장 역시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9만 명으로, 지난해의 16만 명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고, 실업률은 3.0%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로, 작년보다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정 실장은 “미국의 관세 조치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며 “현재 10%의 기본 관세가 인상되면 하락폭은 0.8%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DI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이에 대응하는 국가들이 보복 관세를 단행할 경우 한국 경제의 하방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에서는 글로벌 통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반도체 수출은 선방하고 있지만 다른 산업 전반의 수출 둔화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출 여건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발 관세 인상으로 인한 파급 효과를 우려했다.
이러한 경제 상황은 우리나라가 경험한 몇 차례의 역사적 경제위기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KDI에 따르면 1960년 이후 한국의 연간 성장률이 1%를 밑돈 경우는 네 차례에 불과하다.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에는 -4.9%, 1980년 오일쇼크 때는 -1.5%,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된 2020년에는 -0.7%였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었던 2009년에는 0.8% 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현재 국내외 주요 기관들 역시 한국의 성장률을 0%대로 낮춰 잡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과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0.7%, 씨티그룹과 IM증권은 0.8%,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0.9%, ING그룹과 JP모건도 각각 0.8%와 0.7%를 제시하며 KDI의 전망과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한편 KDI는 내년인 2026년에는 일부 회복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통상 분쟁이 완화된다는 전제 하에,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6%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총소비는 1.7%, 총고정투자는 2.0%로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회복 시나리오 역시 글로벌 통상 환경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KDI는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 경제는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라 성장세가 둔화되는 국면”이라며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경기 회복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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