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책 파는 조선 상인들
도서 「성경책 파는 조선 상인들」

조선 말기, 나라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사람의 길은 완전히 막히지 않았다. 개항 압력과 쇄국정책이 맞부딪치던 풍전등화의 시대, 조선에서 외부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던 ‘고려문’을 오가던 상인들의 발걸음 사이로 뜻밖의 여정이 시작된다. <성경책 파는 조선 상인들>은 바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한글 성경의 탄생과 확산을 따라가며, 한국 근대사의 균열 위에 놓인 신앙의 역사를 서사적으로 복원한다.

“사실 나는 양초를 파는 사람이 아니오”

책은 조선 상인과 국경 인근 선교사의 ‘우연한 만남’에서 출발한다. 고려문을 오가던 의주 만상과 선교사들의 접촉은, 선교사가 직접 들어올 수 없었던 땅에 말씀이 먼저 스며드는 역설적 장면을 만들어 냈다. 값비싼 위험을 무릅쓰고 한문 성경을 사들여 짐 속 깊이 숨기던 상인의 선택, 검문과 처벌의 공포를 견디며 국경을 넘던 발걸음은 ‘전도’라는 이름보다 ‘유통’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의 성경 번역 사역이 있다. 그는 조선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한 채, 조선 상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글 성경의 씨앗을 뿌렸다. 상인은 성경을 ‘사서’ ‘팔았고’, 그 거래의 끝에서 말씀은 조선의 언어를 입었다. 책은 이 위험한 유통망이 어떻게 한글 성경의 인쇄와 확산으로 이어졌는지, 그 연결 고리를 촘촘히 따라간다.

말씀은 먼저 읽혔고, 공동체는 뒤따라 생겨났다

이원식 감독은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축적한 자료와 감각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읽히는 이야기’로 엮는다. 특히 선교사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성경을 읽고 세례를 청하는 공동체가 형성되는 장면은 이 책의 백미다. 훗날 조선에 들어온 언더우드가 이미 한글 성경을 읽고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 느꼈을 놀라움은, 말씀이 제도보다 앞서 도착했음을 웅변한다.

책 속 인물들의 질문은 단순하다. “왜 원수를 사랑하라 말하는가?” “영원한 삶은 무엇인가?” 유교적 윤리와 다른 성경의 가르침 앞에서 흔들리던 질문들은, 한글로 번역된 말씀을 통해 비로소 삶의 언어로 이해된다. 여기서 성경은 외래의 위험한 책이 아니라, ‘읽을 수 있는’ 책이자 ‘살아볼 수 있는’ 이야기로 자리 잡는다.

상인의 손, 번역자의 책상, 독자의 눈

<성경책 파는 조선 상인들>은 신앙사를 미화하지 않는다. 국경의 폭력성, 검문의 공포, 배교와 오해의 위험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닫힌 시대에도 말씀은 사람을 통해 길을 찾았고, 번역과 유통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행위를 통해 공동체를 낳았다. 오늘 우리가 손에 쥔 한글 성경은 선교사의 열정만이 아니라, 상인의 결단과 독자의 용기가 포개져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한국 근대사의 또 다른 입구를, 신앙을 묻는 독자에게는 ‘말씀이 먼저 왔다’는 사실의 무게를 건네는 책. 성경이 어떻게 조선의 문을 넘었는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생생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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