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훼손하려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즉 가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분노에 찬 강력한 어조로 저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늘날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즉 가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복음 외에 다른 것들을 향해 눈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은혜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장 큰 은혜임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끝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교회들 또는 교회 구성원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서로 돕는 것입니다(갈 6:2).
김세민 – 갈라디아서 강설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주장이다. 참으로 대담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회의주의는 시대의 대세이고, 무신론은 인기 있는 대중 운동이며, 불가지론은 유행을 이끄는 정서다. 설령 신이 존재한다 해도 현실적으로는 알 수 없다고 믿는 것이 추세다. 그러나 우리가 신, 그것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을 실제로 알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인생의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간 실존의 목표 또는 목적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혹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 같다’를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5). 개인적으로 혹은 함께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고, 미래의 전망이 확실하고 놀라운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피터 젠센 – 근거가 있는 믿음

왜 우리는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견지해야만 하는가? 그저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보다 배운 것이 많기 때문에 남아 돌아가는 지식의 활용을 위해서? 기독교 철학자연(然)하는 자세를 보이고 싶어서? 그러나 실상 한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견지한다는 것에는, 이런 사치스런 유희나 현학적인 자기 과시보다는 훨씬 더 실제적이고도 화급한 이유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우리의 경건의 시간이나 예배가 참다와지는 데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생활 양식이나 사고 방식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마련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성민 - 한국 기독교 세계관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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