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에서 실종된 7명 중 1명의 실종자가 생존상태로 구조되고 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에서 실종된 7명 중 1명의 실종자가 생존상태로 구조되고 있다. ©뉴시스

수색 현장에 들어가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아파트 단지 전체가 진흙탕이었고 갯벌처럼 발목까지 '푹' 잠기는 곳도 있었다. 그제서야 주변인들이 모두 장화를 신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발을 잘못 디뎠다간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 정도로 미끄럽기도 했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어선 시점에 찾은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한 아파트의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힌남노'의 영향으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7명이 한꺼번에 실종돼 수색작업이 한창인 곳이었다. 실종자들은 지하에 주차해둔 차량을 지상으로 이동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

진흙탕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100여 명이 넘는 인파가 한 지점을 둘러싸고 있었다.

태풍으로 인한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 경찰과 소방, 해병대 등 수색인력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자신의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 사촌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 가족들이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실종된 지 10시간이 지난 까닭에 이들의 눈빛에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크게 자리한 듯했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에 가득 차 있는 물을 빼내기 위해 오후 내내 대용량방사포와 대용량양수기 등을 총동원했으나, 약 45만t으로 추정되는 수량을 30% 배수하는데만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배수작업에 걸리는 시간이 길수록 실종자의 생존확률이 낮아지는 건 뻔한 상황이었다.

현장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실종인원 중 생존자가 있음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수색작업은 실종된 인원을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한 작업으로 받아들여졌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어선 시점,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곤 하나둘씩 지하주차장 입구로 모이기 시작했다.

경찰이 급하게 폴리스라인을 치기 시작했고, 군중 속에서 누군가의 큰 비명소리가 여러번, 동시에 실종자가 14시간만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듯 여기저기서 환호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살았다고?"라는 물음이 연신 들려왔다.

실종된 7명 중 가장 먼저 뭍 위로 올라선 전모(39)씨는 두 발로 걸으면서 물살을 해쳐 구조대원들에게 접근했고, 이후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저체온증을 호소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당연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실종자들 중 한 명이 생존한 채로 구조되자 현장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전씨가 구조돼 구급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이 보인다"며 서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찰나에 찾아온 삶이었기에 더욱 극적이었다.

오후 9시50분, 실종자 중 두 번째로 발견된 김모(52·여)씨도 생존한 상태로 구조되자 수색현장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활기가 돌기 시작했고, 무표정했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기가 보였다.

두 생존자 모두 주차장 천장에 설치된 배관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자, 현장에서는 "기적이 일어나려고 하나보다"는 말과 함께 실종자 전원이 같은 방법으로 생존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20여 분 뒤 발견된 3명의 실종자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같은 기대를 한 번에 무너뜨렸다. 권모(65·여)씨와 남모(68)씨, 신원 미상의 50대 여성 등 3명은 모두 심정지 상태로 구조대원들에게 발견됐다.

자정을 넘겨 7일 0시27분, 50대 남성을 비롯한 3명의 실종자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심정지 상태로, 실종자의 신원을 확인한 가족들은 18시간동안 놓지 않고 있던 한줄기 희망의 끈을 놓치고서 오열했다. 가족끼리 또는 구조대원을 붙잡고서 세상이 떠나갈 듯 울면서 자리를 떠났다.

7일 오전 1시까지 이곳 지하주차장에서는 총 8명의 실종자가 구조됐다. 2명은 살았으나 6명은 안타깝게 숨졌다.

소방당국은 배수작업이 모두 완료돼 도보로 실내 수색이 가능해질 상황이 되면 인력을 투입해 추가 실종자가 더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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