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의과학의 발달로 질병으로부터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 진단 기술과 수술 기술의 발전은 근대 이후 획기적이다. 장차 다가올 미래에는 의사가 해왔던 많은 부분이 AI와 결합된 기계가 대신 할 것이다. 의과학의 발달과 함께 생명의료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윤리가 빠진 의술은 의술을 한갓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엄성은 위협받게 된다. 인간은 의학 발달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한편 의학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영역까지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들이 낙태와 의사조력자살, 대리모, 마약성 약제의 오남용 등이다.

의료윤리의 가장 핵심 가치는 생명 존중, 생명권이다. 생명은 실존이고 인간 존엄성의 시작이다. 생명의료윤리가 학문적 체계와 기준이 구체화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당시 독일은 우생학을 내세우며 비인간적인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모습이 다르고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죽어갔다. 의술이 효율에만 매몰되어 인간의 가치를 재단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인간의 생명을 인간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파괴하거나 없애는 데 의술이 사용된다는 것은 의사로서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인간들은 이 같은 비극적인 만행을 저지르지 말자고 뉘렌베르그 조약을 만들고, 헬싱키 선언 등을 만들었다.

자신의 행동과 행위에 대해 잘한 것은 칭찬과 이에 걸맞는 보상을 받고, 잘못한 것에 관해서는 남에게 책임을 미루지 말고 자신이 감당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다. 자신의 책임이나 실수를 남에게 전가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분노가 일어난다. 인간으로 양심적 기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근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낙태죄에 대한 형법과 관련 법률의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입법 공백 상태에서 어떤 의사는 36주 된 아이를 제왕절개 후 죽여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검찰 측은 “법의 공백 상태를 이용하여 생명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자신들의 무절제한 성행위로 인한 임신을 피하려고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여서 없애는 일은 정의롭지 못한 행위다. 자신의 행복추구와 편의를 위해 같은 인간의 생명을 없애는 행위가 정당화되면 안 된다. 의사가 돈벌이를 위해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을 제외한 돈벌이용 낙태에 동조하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경악스러운 일이 고발되자 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회원을 중앙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징계하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 8월에는 더불어 민주당이 제안한 모자보건법에 대해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하며 반대의견을 발표했다. 여기까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단체로서의 입장이 일관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발표된 12월 의사협회의 공식 의견 내용은 앞뒤가 다른 내용을 발표하여 의사단체의 전문성과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내용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모순된 논리를 전문성이라는 가면으로 포장한 내용들이다. 내세운 주장들 하나하나가 통계와 현실에 대해 아전인수적인 해설을 하고 있다. 모든 내용이 낙태를 시술하는 의사들만 옹호하고 있고,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2020년 산부인과 최고의 전문성을 대표하는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등이 제시한 기준까지 무시하고 있다.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온갖 법적 리스크를 무릅쓰고 고위험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하고 있는 동료 의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들을 대표하는 중앙회 의사협회의 의견 표명은 신중하고 일관돼야 한다. 일부 의사들의 돈벌이를 위한 억지 주장을 공식 입장으로 발표하면 안 된다. 일관되지 않은 의사협회의 오락가락하는 행보에 대해 공시적인 입장표명이 필요하다. 국민의 신뢰를 견고히 쌓으려면 향후 일관된 논리와 주장을 견지해야 한다.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소탐대실하면 안 된다. 국민의 신뢰는 뛰어난 의학 기술이 아니라 윤리적인 의사의 모습을 통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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