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 1년을 맞아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문을 여는 것이 통일부의 시대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에 대한 ‘선(先) 비핵화’ 전략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의 남북 ‘두 국가 관계’ 발언은 그가 장관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 온 워딩이라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으나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 부처의 수장으로서 적절치 않다. 북한 김정은이 주장하는 ‘두 국가론’을 따라 하는 게 통일부의 지향점과 맞지 않을뿐더러 두 국가가 화해와 평화 위에 공존할 거면 통일부가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정 장관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선 비핵화’ 전략을 폐기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현실성이 없다며 정부가 사실상 ‘선 비핵화론’을 버리고 ‘선 평화’를 추진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도 사실상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근거가 모호하다. 국제사회는 지난 30년간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노력해 왔다. 지난 5월 미·중 정상회담 직후 양국 정상은 ‘북한 비핵화’에 같은 입장임을 재확인했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정부의 입장 또한 이전 정부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브뤼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1차 한-EU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에도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의지 재확인’과 ‘북한을 NPT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도대체 무얼 근거로 정부와 미국, 중국까지 선 비핵화를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국제사회와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에 대해 초지일관 변함이 없다. 문제는 북한이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건데 북한이 거부한다고 미국과 국제사회가 ‘선 비핵화’를 포기했다는 주장하는 건 심한 이치에 와닿지 않는다. 이런 주장이 자칫 북핵 대응 공조를 약속한 국제사회로 하여금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해주는 상황으로 흐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북한 김정은은 선제 핵 타격을 공공연하게 교리로 발표하고, 전방지역에 북한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되는 등 핵무기로 우리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없는 ‘선 평화론’은 안보 공백을 야기할 뿐이다.

정 장관은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호칭하고,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축소를 주장하는 등 선 넘는 정치적 발언으로 자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정치인이다 보니 정치적 수사(修辭)에 능한 걸 참작하더라도 외교·국방 등 북핵과 안보 문제의 주무 부처와 긴밀한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쏟아내는 발언들이 얼마나 국익에 해가 될지부터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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